‘남북 보건의료협정’ 체결…공동 실무기구도 필요

전우택
연세대 의학교육·인문사회의학교수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의학신문·일간보사] 꿈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장면이 있었다. 남북한의 두 정상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 포옹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하여 진지한 대화를 함께 하는 그런 날이 올 것에 대한 꿈이었다.

분단 70년 동안,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었지만, 동시에,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기에, 꿈같은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였던 꿈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날이 와버렸다. 정말 그 꿈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이것이 정말 꿈인지 현실인지 실감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한반도 정세는 마침내 거대한 변화 속에 들어갔고, 이제 한국 사회는 그 거대한 변화에 대한 대응을 전 영역에서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역 중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보건의료영역이다.

본 글에서는 남북한의 새로운 관계 시대 속에서 보건의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이제부터 어떤 대응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한반도 공동체시대 본격 개막

첫째, 통일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한반도 공동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어떤 분들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한반도 정세 변화가 곧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남한이 북한의 모든 경제 개발을 책임지고, 의식주와 교육, 보건의료의 모든 일들을 다 담당하여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남한의 보건의료 시스템과 수준을 북한 전역에 확산 또는 이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북한은 드디어 국제 사회에 정상국가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의 체제가 더 안정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전통적 의미에서의 “통일”은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상황 속에서, 북한은 자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더 큰 독자적인 책임감과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며, 그 일을 함에 있어 외국 정부 및 국제기구들과 좀 더 적극적이고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비정상적인 국가로 있으면서 경제적 붕괴 상태 속에서 긴급구조를 원하던 시대에 인도적 지원을 하던 개념과는 전혀 다른 북한과의 협력개념을 이제부터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한반도 건강공동체 시대를 이루어야 한다. 남북한은 이제부터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인적·물적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남북한은 보건의료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남북 건강공동체 추구 바람직

무엇보다도 감염병 영역에서 그러하다. 먼저, 남한의 질병들이 북한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남한은 북한보다 외국과의 교류가 훨씬 더 많은 국가이고, 그에 따라 메르스의 경우와 같이, 외국의 질병이 남한으로 들어와 퍼질 위험성이 매우 큰 나라이다.

그동안 남북한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감염질환에 있어 북한이 남한의 질병을 주시하여야 할 일은 적었다.

지난해 6월 통일보건의료학회는 ‘보건의료 영역의 통일 준비’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많은 남한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북한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것은 북한에게 새로운 보건의료적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의 질병이 남한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커진다.

현재 북한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결핵, 간염, 말라리아, 기생충 등의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남한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남북한을 모두 포함하는 한반도 전역이 동시에 문제를 가질 수 있는 보건의료 문제들도 있다.

예를 들어 인수공통질환이나 환경, 수질오염, 산업폐기물 등의 문제로 인한 보건의료 문제 등은 남북한이 동시에 공동의 문제로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동안 남한과 북한은 각자 자신들의 영토 안에서의 보건의료적 문제에 집중하여도 되었었다면, 앞으로 새로운 남북관계 시대에 적어도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남북한 각자의 영토가 아닌, 한반도 차원에서의 공동의식과 공동 대처가 필요한 일들이 있게 될 것이며, 이것을 우리는 한반도 건강공동체라는 개념 하에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건강위해요소 공동 대처 중요

셋째, 이를 위하여 다차원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한반도 건강공동체 구성을 위하여 이제부터 남과 북은 함께 하여야 할 일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남북보건의료협정을 맺어야 한다.

그래서 감염병 관리, 의료정보 공유, 자국민이 서로의 국가에 가서 체류하는 동안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등에 대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공동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판문점 선언에서 이야기 된 남북공동 연락소에 보건의료 영역 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이 그 출발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남한 내에서는 향후 북한과의 보건의료 협력을 해 나가는 일에 있어 정확한 정책 수행을 가능하도록 하는 조율 및 조정 기구가 만들어져 활동을 시작하여야 한다.

보건의료 문제는 보건의료 전문가들만이 모여 논의하고 결정하기에는 너무도 큰 주제이다.

국가적으로 보아도 위로는 대통령은 방향과 의지, 그리고 기재부, 통일부, 보건복지부 등의 부처별 의견 조율, 보건복지부와 전문가들의 정책 조정, 전문가들 사아에서의 의견 수렴, 국제기구와 남북한 정부, 관련 민간단체 등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 의료 현장에서의 남북한 보건의료인들의 실행 방식 등, 아주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율과 조정이 얼마나 시행착오 없이 효율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가에 향후 남북보건의료 협력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보건의료문제 근본 개혁 기회

남북한의 새로운 시대에,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협력은 단순히 각 기관별, 지자체 별로 북한에 올라가서 약품을 나누어 주고, 병원을 지어주는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것을 일부 포함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더 큰 그림 하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보건의료 우선순위 앞에서, 남한 당국과 보건의료인이 북한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전문성과 민족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는 것부터가 중요할 것이다.

사고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헌신적 노력은 북한 사람들의 남한과의 궁극적 통일을 향한 마음을 여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차원에서 보건의료 문제를 새롭게 생각하고 다루는 이 일은 그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세월만 가고 있던 남한의 많은 보건의료 문제들을 그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고 개혁을 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한에게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한반도 건강공동체 구성을 위한 노력은 북한 보건의료만이 아닌, 남한의 보건의료도 살리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 모두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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