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집단 사망, 주사액 나눠 쓰는 방식에 ‘트라우마’
현장에서도 ‘멀쩡한 백신 놔두고 후진국형 백신 접종 이해 불가’

피내용 BCG 백신과 경피용 BCG 백신 접종 예시.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오는 6월부터 피내용 BCG 백신 접종이 재개될 예정임에도 불구, 이를 바라보는 부모들과 현장 소아과 개원의들의 시선이 차갑다. 주사액을 나눠쓰는 피내용 방식을 두고 일각에선 ‘국가 재정을 이유로 후진국형 BCG를 부모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피내용 BCG 백신 접종 재개와 경피용 BCG 백신 무료 지원 종료를 두고 정부의 무성의한 국가예방접종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국내에서 별 무리 없이 피내용 BCG 백신과 경피용 BCG 백신을 병용해 사용해왔지만, 이대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사액을 나눠 쓰는 피내용 방식에 대해 거부감이 커졌다는 것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통상적으로 피내용 백신은 하나의 바이알 당 최소 5명 이상의 신생아가 접종받는다. 피내용 백신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약 20명의 신생아가 하나의 바이알을 나눠 접종하는 경우도 흔했다.

문제는 이렇게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주사액 나눠 쓰기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신생아 집단 사망의 원인을 오염된 주사액을 나눠 썼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 비춰보면 신생아 부모들의 입장에선 피내용 백신을 나눠 접종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피내용 BCG 백신을 나눠 씀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WHO 기준으로도 피내용 백신을 권장하고 있고, 주사액을 나눠 쓰는 방식은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이를 두고 소아청소년과 개원가를 포함, 일선에서 신생아에 대한 국가예방접종을 수행하는 현장에서는 ‘현장을 모르는 발언’이라고 지적한다. 한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는 “생후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피부에 주사액을 주입하는 행위는 신생아의 정말 작은 혈관을 찾아 접종하는 소아과 개원의들에게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경피용 백신도, 피내용 백신도 써봤지만 안전성을 생각한다면 1인 1회용 제재인 경피용 백신을 사용하는게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WHO의 기준이 저개발국가를 초점에 뒀기 때문에 국내 경제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바람직한 접종행태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소아과 전문의는 “대부분의 선진국 국가에서는 결핵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BCG의 중요성이 사실상 낮아진 것이고, 일본 또한 피내용 백신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정작 일본 국민에게 접종하는 방식은 경피용 백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올해부터 WHO에서 경피용과 피내용 둘 다 접종을 권고하고 있어 굳이 피내용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경피용과 피내용 백신에 대한 호불호 논란은 학계에서도 이어져왔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2008년도에 이어 올해에도 양 측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한 백신 관련 학회 관계자는 “결국은 부모가 선택하게 하고, 이러한 선택의 기회를 동등한 환경 속에서 제공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면서 “돈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따지게 되면 결국 국가예방접종 사업은 엉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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