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해당 장소 특정 불가’ 원심 파기-“의약분업 훼손, 사정 찾기 어려워”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다수 의료기관이 입주해 있는 고층 건물과 연결된 단층 건물에 동일한 부지라는 이유로 약국개설 등록을 거부해선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해당 장소가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의약분업의 근본취지는 약국을 의료기관으로부터 공간적ㆍ기능적으로 독립시킴으로써 약국이 의료기관에 종속되거나 약국과 의료기관이 서로 담합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지 약국을 의료기관이 들어선 건물 자체로부터 독립시키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원은 최근 A씨가 창녕군수를 상대로 제기한 약국 등록사항 변경등록 불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했다.

앞서 원심은 기존 의원 4곳이 입주한 연면적 약 1,000㎡의 4층 건물과 A씨가 약국을 개설하고자 하는 같은 울타리 내에 있는 면적 42㎡의 단층 건물이 공간적·기능적으로 독립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등록거부 사유인 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2호나 제3호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약사법 제20조는 제2항 전문에서 약국을 개설하려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에게 개설등록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제5항에서 또는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하여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제3호)”에는 개설등록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건 단층 건물은 4층 건물과 동일한 부지 위에 있고, 4층 건물의 부속 건물로 볼 여지가 있으며, 4층 건물의 출입구에서 곧바로 단층 건물로 출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4층 건물을 드나드는 제3자로서는 4층 건물과 단층건물이 공간적ㆍ기능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고, 두 건물이 동일인의 소유인 사정까지 고려하면 공간적·기능적인 관계에서 독립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가 이 사건 단층 건물에 약국을 개설하는 것은 약국을 개설하려는 장소가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구내인 경우(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2호)에 해당하거나,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하여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같은 항 제3호)에 해당한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의 개설등록을 받지 아니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4층 건물은 여러 의료기관이 들어서 있는 1동의 건물일 뿐 그 자체가 단일한 의료기관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피고의 처분사유와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만으로는 원고가 개설하려는 약국이 이 사건 4층 건물에 있는 여러 의료기관 중 어느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ㆍ변경 또는 개수한 곳’에 위치한다는 것인지 특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4층 건물에 들어선 여러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의료기관이라거나, 원고가 약국을 개설하려는 장소가 위 의료기관 모두로부터 공간적·기능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아서 의약분업의 취지가 훼손된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한 “A씨가 약국을 개설하려는 장소가 약사법이 금지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원고가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해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자료도 부족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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