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5.5), 어버이날(5.8), 한부모가족의 날(5.10), 입양의 날(5.11), 부부의 날(5.21) 등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리라. 동서고금 어느 사회나 건강한 가정의 토대 위에서 번영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매일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가족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일터로 나간다.

어린이에게 가족의 의미는 참으로 중요하다. 어린이는 가족의 보호가 없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인간관계도 부모형제로부터 배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주는 소속감이다. 가족과 함께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나누며 정서적인 안정과 발달을 이룬다.

그런데 무슨 운명을 타고 났는지 죽을 때까지 엄마와 아빠라는 존재를 모르고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슬픈 이야기지만 부모로 부터 양육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정부는 이들을 요보호아동이라고 한다. 세상에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아동이 어디 있을까. 아마도 이 말은 부모가 돌보지 못하여 국가가 대신 돌봐야 하는 아동이라는 말일 것이다.

요보호아동은 불의의 사고, 경제파탄, 이혼, 나이 어린 부모 등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 어렵거나 때로는 친부모임에도 자식을 학대해 공권력에 의하여 부모를 떠나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아동양육 시설인 보육원에 맡겨진다. 만18세 성년이 되면 정부 지원이 중단되어 보육원을 퇴소해 혈혈단신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오래전 필자는 아내를 따라 보육원에서 아기 돌보는 봉사를 한 일이 있다. 이들은 먹고, 입는 것 등 일상생활에서는 보통 가정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엄마·아빠의 사랑이다.

안아 주고 업어 주는 자원 봉사자들이 저녁이 되어 떠나려면 매달리는 아이들의 슬픈 얼굴에서 이들에게 사랑이 절실함을 알게 된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매년 4천~5천 명의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분리된다.

대부분 보육원에 들어가는데, 2016년 통계에 따르면 281개 아동시설에 1만 4천명의 아동이 살고 있다. 필자가 아는 바에 의하면 OECD 선진국들은 이렇게 가정에서 분리되는 아이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네덜란드는 연간 2~3명, 스웨덴 2~30명, 프랑스 600여 명 정도가 된다. 이 나라들도 오래전에는 국가적으로 보호할 아동이 많았는데, 20세기에 들어와 아동에 대한 국가의 지원으로 그 수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부모의 자녀 양육포기가 우리나라에 유독 많은 것은 아동에 대한 국가지원이 낮기 때문이다. 미혼모를 예로 들어도 연간 1000여명의 나이 어린 엄마들이 자녀 양육을 포기한다. 사회적인 편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미혼모 혼자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부 둘이 벌어도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여자 혼자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자라면 매월 150만원 정도를 정부가 지원한다. 그 3분의 1인 50만원 정도라도 미혼모 가정에 지원한다면 양육을 포기하는 부모의 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엄마 품에서 자라는 아동의 행복은 시설에서의 삶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식을 버린 엄마가 평생 가슴에 지고 가는 아픔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조너선 브래드 쇼 영국 요크대 교수는 “유년 시절에 행복하지 못한 인재는 불완전한 성인이 될 위험이 크다”며 “필리핀이 1970년대 이후 성장하지 못한 것이나 일본이 최근 성장동력을 잃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동 투자에 대한 인식 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도 “어린이는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나야 한다(제1장)”라고 선언하고 있다. 정부가 모든 아이들이 부모 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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