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000억원을 형성하고 있는 베트남 의약품 시장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베트남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다. 세계 역사상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유일하게 이겼다는 자부심도 한 몫하고 있다.

이정윤 편집부국장

베트남은 잠재력이 매우 큰 나라다.

한반도의 1.5배 크기의 면적을 가진 나라이며 인구는 1억명이나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354달러(미화)에 그치고 있지만 연간 경제성장율이 6-7%에 달할 정도로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어 포스트차이나로 불리울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한 신(新)남방정책도 베트남을 겨냥한 경제권 확대 정책이다.

베트남은 우리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다.

삼성전자의 수출액이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5500여개에 달하는 현지 진출 한국기업이 전체 수출액의 35%를 차지할 정도다.

베트남 경제를 절대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한국기업 가운데 무한 잠재성을 가진 의약품 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점을 우려스럽다.

베트남이 의약품과 관련 한국과 한국인에 신뢰를 접은 이유는 뭘까?

한국 의약품을 베트남에 수출하는 현지 일부 의약품 에이전트들의 어처구니 없고 간 큰 일탈행위가 그 원인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제약계에 따르면 첫 수출시 A등급의 위탁제조업체와 계약서를 제출 한 후 나중에 B등급 위탁제조업체로 계약이 변경됐는데도, 거짓 계약서를 만들어 베트남 의약품 당국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기극이 얼마나 갈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까.

베트남 당국이 한국 현지 실사를 통해 이런 불법을 적발했으니 우리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단단히 화가 난 베트남 당국은 한국에 대해 의약품 입찰규정을 변경해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인정받은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만 1-2등급으로 인정해 7월부터 시행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2등급으로 인정하던 PIC/S(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 가입국은 인정이 안돼 우리나라의 입찰등급이 2등급에서 6등급으로 떨어진다.

2017년 기준으로 완제 및 원료의약품의 베트남 수출(1950억원)이 70-80%를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자칫 2000억원대 베트남 시장이 통째로 날라 갈 위기에 처해 있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베트남을 겨냥해 신남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중이다.

중국이나 미국 시장을 대체해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규모있는 시장을 개척한다는 정책이 '의약품 패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베트남에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의약품 수출에 목을 맨 우리 제약계에도 적신호가 되고 있다.

정부도 베트남 시장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징후가 보인다.

연초 식약처 방문단이 베트남을 찾아 상황을 파악한데 이어 이달 15일부터 나흘간 류영진 식약처장이 베트남 현지를 방문해 신뢰회복에 나선다.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진솔하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안고 가 격앙된 베트남을 설득하길 바란다.

땅은 비온 뒤 더 굳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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