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
한국뇌연구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과학기술 혁신과 이에 수반된 사회경제적 변혁을 우리는‘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는 제3차 산업혁명을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류의 새바람인 제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사물인터넷 △로봇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기술로 뇌과학을 꼽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미래에 정말 사라질까? 과거에는 한 분야만 공부하면 전문 직업인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Hyper-Connected)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와 미래는 융·복합 인재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전문분야의 의사도 필요하겠지만 앞으로는 의사과학자(Physician-Scientist)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작년 3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계하는 기술, 즉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Brain Machine Interface, BMI)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인 뉴럴링크를 설립했다. 같은 해 4월에는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가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BMI를 비롯한 뇌과학 융합 기술이 기대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학적인 전문 지식과 윤리성을 가진 의사과학자 육성이 시급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사과학자는 20여년 이상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원인으로 △경력단절 △임상전공의나 전임의와의 급여 차이 △대학원 졸업 후 진로의 불확실 등이 꼽히고 있다. 또한 국가의 지원도 2010년 30억 원에서 2017년 6억 3천만 원으로 감소했다. 말로는 기초의과학자의 양성 및 활용과 필수라고 외치면서 정책지원은 정반대인 셈이다.

기초의과학은 보건·의료산업이라는 특정 영역이 아닌 여러 영역에 걸쳐있는 의생명과학의 기초가 되는 분야다. 단기 성과보다는 꾸준한 투자와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분야이다.

단기 성과를 내야하는 부처들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정책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계자들은 의학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할 사안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기초의과학 분야를 교육부의 영역으로 넘기는 경향 때문에 양쪽에서 모두 소외된 게 현실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1964년부터 ‘의사과학자 양성프로그램 MSTP(Medical Science Training Program)’을 실행하고 있다. 보건·과학·공학을 어우르는 폭넓은 교과과정과 다양한 연구환경에서 심도 깊은 연구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43개 의대에서 연간 약 170명의 의사과학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전체 의대생의 4%를 의사과학자로 양성하고 있다. 최근 15년 동안 프로그램 수혜자 10여 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랜드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중개연구이자 플랫폼 기반연구로써 기초의과학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기초의과학이 의과학의 개념을 생명과학, 정보통신기술, 로봇공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를 연계·융합하도록 확장하고, 법·윤리·사회 문제까지 포괄하도록 정의를 넓혀야 한다.

‘인류의 마지막 미스터리’로 불리는 뇌과학 역시 기초의과학의 도움이 절실하다. 향후 한국의 뇌과학 10년을 책임질 제3차 뇌연구촉진 기본계획은 ‘인간을 위한 뇌과학’을 모토로 ‘뇌 이해를 넘어 활용의 시대 진입’이란 비전을 담고 있다.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 융·복합 연구 확대와 기초-임상 간 중개연구 활성화가 필요하다.

특히, 뇌과학 분야는 인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임상의, 의학전공자들의 연구와 기초과학자들의 연구가 관점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를 연계·융합하는 접착제와 같은 의사과학자의 양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연구 인력이다. 한국을 뇌 신흥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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