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균
서울 성북·이정균내과의원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산수유의 꽃은 ‘노란 별’과 같다. 꽃송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주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산수유의 꽃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 전혀 다른 모습인데, 반드시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산수유의 꽃을 관찰하는 것이 산수유여행의 백미란다. 어떤 나무든 꽃은 열매를 얻기 위한 과정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가지와 잎의 역할이 필수다.

산수유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꽃과 열매에 집중하며 꽃을 관찰한다. 줄기의 중요 특징은 껍질이 벗겨져 중국단풍나무 줄기처럼 너덜너덜하여 그 용모는 늘 꽃과 관련된 시를 많이 남긴다. 잎보다 꽃에 관심이 많다.

섬진강 주변은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일찍 찾아오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화와 산수유가 국내 최대 단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란 꽃구름 같이 피었다가 폭죽처럼 터지는 구례 산동면의 산수유는 꽃 대궐을 이루며 수많은 상춘객들을 끌어 모은다.

산수유는 낙엽 소교목, 5~7m 높이 정도로 자란다. 열매는 핵과, 지름 1~2㎝의 타원형, 10월에 빨간색으로 익어 겨울의 운치를 더해 준다. 3월이 되면 산수유마을인 구례군 산동면은 마을마다 노랗게 물들인 물결 속 산수유가 장관을 이룬다.

산수유 속명 코르누스(Cornus)는 ‘뿔’이라는 뜻의 라틴어 코르누(Cornu)에서 유래하며, 나무의 재질이 무겁고 단단하다는 뜻이다. 종명 오피시날리스(officinalis)는 ‘약효가 있다’는 뜻이다. 이름은 산수유(山茱萸), 석조(石棗)에서 유래한다. 춘황금화(春黃金花), 추산호(秋珊瑚), 촉산조(蜀酸棗), 육조(肉棗), 실조아수(實棗兒樹)라고도 하며, 다른 이름으로는 오유, 오수유, 산시유나무, 산수유나무라고도 부른다.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I” 진메마을 진메사람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는 봄 이야기가 산수유 꽃으로 봄을 장식한다.

“살구꽃이 피기 전에 구례 산동네에는 산수유 꽃이 핀다. 구례 산동의 산수유 꽃이 아니라 꽃의 계곡이다. 나는 말만 ‘산동산사유’ ‘구례 산동 산수유’ 하는 줄 알았다. 지리산 온천이 자리 잡고 있는 산동은 마치 커다란 소쿠리 속에 노란 물감을 쫙 엎질러 놓은 것 같았다. 조그마한 것을 보고 감동을 잘하는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층층나뭇과의 갈잎중간키나무 산수유(山茱萸)는 ‘산에 사는 쉬나무’를 뜻한다. 산수유의 노란 꽃은 잎보다 먼저 핀다. 학명에는 열매를 강조했다. 산수유의 열매는 멧대추처럼 작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산수유를 ‘촉나라에서 사는 신맛의 대추’ 즉 촉산조(蜀酸棗)라 불렀다. 명대(明代)에는 촉산조를 육조(肉棗)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수유를 일찍부터 즐겨 심었다. 삼국유사에 신라 제48대 경문왕과 관련해서 산수유가 등장한다.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비를 비롯한 궁궐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몰랐지만 오직 모자를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인은 평생 이 사실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다가 죽을 즈음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를 향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에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두 베고 대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그 뒤에는 다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 났다.

산동애가


잘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쓰러졌네


백부전 <산동애가>중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에 대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산수유는 신라시대 자연생태만이 아니라 정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산수유처럼 사료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나무는 인문생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마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산수유도 양반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산수유 꽃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의 모습이 다르다. 꽃송이는 별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사람도 누구나 가슴에 자신만의 별을 갖고 있다. 인생은 곧 자신만의 별을 빛나게 하는 과정이다. 별은 어둠에서 빛나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산수유는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 중량감 없이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그래서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꽃과 그늘을 함께 바라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에서 나온 문장이다.

박노해는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매화와 산수유가 다투어 피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차례 피어난다’. 자연을 경쟁의 구조로 생각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 자기를 이긴다는 것 “그 자리에서”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서둘지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세상이 요구하는 최선이 아닌 “자기만의 최선”을 다한다. 나 또한 구례 산수유가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동네의 산수유의 빛깔과 향기를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봄이 되리라.

중학교 교과서 - 김종길 ‘성탄제’에서 만난 산수유는 붉은 열매의 효능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산수유는 어린 시절 ‘성탄제’에서 만난 해열제 같은 기억 느티나무 잎, 산수유를 보고, 존경과 사랑의 대상 그래서 꽃에 관한 기억은 만나는 장소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로 바뀐다.

산수유는 해방공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꽃임에 구례군 산동면의 백부전은 큰 오빠는 징용으로 끌려가고, 둘째 오빠마저 여순사건으로 처형당하자, 셋째 오빠를 대신해 죽음을 자처하여 토벌대에 끌려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바로 산동애가(山東哀歌)다.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산수유 핀 고향을 그리는 가사는 구슬프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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