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 기준 준비과정 공론화 필요
의료기기도 의술요소 평가 면제 대책 없나?
신의료기술평가 표준화로 산업화 촉진 기대
평가 통해 유망기술 발굴 지원 방안도 가능

선경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의료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첨단 과학기술이 의료에 접목되면서 평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제약보다는 의료기기 산업에서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신약이 개발되더라도 투여방법은 대개 경구나 주사로 주입하기 때문에 의료기술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약의 경우는 물질의 안전성과 유효성만 검증되면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은 생략되기도 한다.

반면 의료기기의 경우는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인정되어서 식약처에서 품목허가를 받더라도, 그 기기를 적용하는 의료기술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더불어 증명되어야만 바야흐로 상용화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심장병 치료법의 하나인 카바수술이다.

산업화 측면에서 볼때 신의료술평가는 제품의 인허가와 함께 이중의 규제로 보일 수 있다. 대부분의 의료기기는 이미 알려진 전자-기계-통신 범용기술에 의료현장의 아이디어가 접목되는 원천 적용(application)의 싸움이다. 기술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일단 시장에 출시되면 아이디어를 카피한 유사제품들이 바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의료기기 연구개발은 아이디어가 시장으로 진출하는 시간(time-tomarket)과 시장 선점효과가 중요한데, 식약처의 품목허가 후에 신의료기술 평가에서 이중으로 지체되는 시간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신의료기술 평가제도는 미국처럼 보험급여 대상품목만 대상으로 하는 네거티브 규제가 아니고, 모든 신제품에 대해 일괄 적용하는 포지티브 규제이다 보니 업무 부하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새로 개발된 국산제품은 임상에서 사용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신의료기술평가 도구인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이나 메타분석에 제출한 자료도 부족하다. 결국 국내 개발품은 외국산 수입제품에 비해 인허가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런 장벽을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바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능력 있는 극소수 기업의 경우이고, 대부분 의료기기 개발 업체들은 국내시장을 거쳐야 한다.

왜냐하면 국내시장은 그 동안의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해외로 진출할 실탄을 마련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해외로 바로 나가더라도 외국기업과의 거래에서도 자국에서 상용화도 안된 제품에 대해 협상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심지어는 어렵게 상용화에 성공해서 외국시장에 진출하면 그 다음해 유사한 제품들이 만들어져 역수출된다고 한다.

더구나 국민의료비 상승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진행되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에 따라 생산인력은 감소하는데, 급격히 늘어나는 의료비는 국가 경제에 심각한 부담요인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민간병원들의 수익구조는 보험 진료비가 늘어나면 따라서 비보험 진료비도 같이 늘어나는 형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는 원가를 밑돌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범위가 늘어나면 병원은 비보험 진료를 통해 수익을 맞추게 되고 이에 따라 환자 본인부담이 늘어난다.

최근 정부의 ‘급여보장성 강화’ 정책이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까지 확대 추진하는 배경에는 서민경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있다고 보이는데, 여기에서 신의료기술평가가 의료비 억제와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책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달 보건의료연구원 연례 컨퍼런스에서 근거기반 의료과 가치기반 의료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 언급한 것이 의료산업화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속에 포함된 장애물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신의료기술평가와 관련해서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들(예를 들어 빅데이터 활용기술, 인공지능, 3-D 바이오 프린팅, 원격의료, 사물인터넷 등)이 의료와 급격히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의 기준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런 준비과정이 공유되고 공론화 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표준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알아야 연구개발의 방향성을 맞추고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비용손실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식약처의 품목허가 과정은 그 자체가 산업화를 촉진시키는 도구도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에콰도르는 식약처 인허가를 공유하고 있어 중남미 진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성과를 낸 바 있다. 신의료기술평가도 표준화를 선점하여 산업화 촉진도구가 될 수 있는 전략도구가 될 수는 있기를 바란다.

셋째, 의료기기도 의약품처럼 식약처 인허가 과정에서 의료기술 요소 평가를 면제받는 대책은 없을까 한다. 현재 오송과 대구에는 의료산업화에서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기 위해 최첨단 클러스터가 구축되어 있고, 연구개발 지원에서 제품화까지 전주기 지원이 가능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이미 식약처는 몇 년 전부터 공공기관인 오송첨복재단과 공조해서 ‘다가가는 인허가 서비스’를 시작했고 점차 확대할 계획에 있다. 신의료기술평가도 첨복단지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길 바란다.

넷째, 특허는 연구개발의 결과물이기도 하면서, 거꾸로 특허 탐색을 통해 연구개발 아이템을 도출할 수도 있다. 신의료기술의 평가를 통해 유망기술을 사전에 발굴해서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방안도 가능하리라 본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신의료기술평가는 또 하나의 시장 진입장벽일 수 있다. 덕분에 소수의 인원으로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보건의료연구원이 산업화의 병목(bottle neck)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의료에는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는 부분과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부분이 섞여있기에, 정부나 공공기관도 국민건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면서 동시에 의료산업을 촉진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느라 어려움이 많다. 국민들의 성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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