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선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보험이사
진접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오랜 진통 끝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는 5월 18일부터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도입, 시행하기로 공표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란 마약류취급자 또는 마약류취급승인자가 수출입, 제조, 판매, 양수, 양도, 구입, 사용, 폐기, 조제, 투약하거나 투약하기 위해 제공 또는 학술연구를 위해 사용한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취급정보에 관한 사항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당초에는 작년 6월 ‘마약’을 시작으로 11월 ‘향정신성의약품’, 올 5월 ‘동물용마약류’ 순으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한 보고를 의무화할 계획이었으나,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기능장애 발생 등 일부 발견된 문제점을 개선하고, 마약류의약품 투약·조제 등 보건의료 현장에서 예상되는 업무 혼선을 방지하기 위하여 1년 정도 시행이 연기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마약류의 일종으로 수면마취제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프로포폴의 일부 병의원에서의 과다투여문제 등을 포함하여 마약류 관련 의약품의 오남용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오·남용시 국민건강에 위해가 되는 마약류 및 향정신성의약품의 제조·수입·유통·사용 등 모든 취급과정을 전산시스템을 통해 정부가 모니터링해 불법유통을 방지하고 사용량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 현실적으로 우려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환자의 개인의료정보 유출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상당히 우려된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환자 이름, 주민등록번호, 병명, 투약한 향정신성의약품명 등을 입력해야하므로, 특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환자의 개인의료정보가 제3의 영역으로 유출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시스템에 덧붙여져 개인의료정보의 지나치고 과도한 수집과 관리이며, 개인의료정보를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할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또한 환자들에게 지금도 힘들어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에 대한 지나친 불안에 향정신성의약품 투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가중되는 꼴이다.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피가 더욱 심화되어 조기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치료시기를 놓쳐 정신건강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할 수도 있다.

향정약 순기능 처방 위축 우려

둘째, 향정신성의약품의 순기능적인 적절한 처방이 위축되어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 정신질환 전반에 폭넓게 처방되어지는 약물이고 전문의의 적절한 처방은 환자의 치유와 삶의 질 개선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마약류통합시스템을 통한 환자의 개인정보유출과 절차적 복잡성 및 업무가중은 전문의의 시의적절한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을 위축시켜 환자 치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보건당국이 향정신성의약품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취지라면 그것보다는 전문의가 환자에게 충분한 교육과 지도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셋째, 병의원과 약국에서 업무 및 비용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게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점이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시행되면 일선 병의원 및 약국에서 업무부담이 매우 증가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로 인한 보충인력충원이 요구되어 인건비 증가 등 엄청난 경영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단 한 번이라도 단순착오보고를 하거나 실수로 늑장보고를 하더라도 경고없이 최소 7일 이상 업무정지가 될 수 있는 지나치게 엄격한 처벌은 일선 병의원의 진료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에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은 일선 현장에서 진료 및 투약에 지체나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전국 모든 병의원과 약국의 처방·조제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관리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DUR시스템이 이미 운영되고 있는 마당에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까지 추가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시대역행적 이중통제일 뿐만 아니라 지나친 행정낭비, 혈세낭비가 아닐 수 없다.

민감한 의료정보 취합 말아야

이상의 문제점들을 비춰보았을 때 보건당국은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환자인권을 훼손하지 않는 차원에서 병명같이 민감한 의료정보는 더 이상 확대하여 취합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보건차원에서 오·남용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마약류의 전반적인 경로 파악과 감시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질병의 환자에게 어떠한 마약류가 투여되었는가를 확인하려면 대안으로서 현행 DUR시스템의 개선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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