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 2월 4일 시행되어 한 달이 넘었다. 법 시행 전 3개월의 시범사업 기간을 포함하여 그동안 미리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밝혀 두려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한 사람(19세 이상 성인)이 1만2644명이고,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을 받고 연명의료결정에 따라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한 환자들도 1664명(3월 16일 18시 기준)이었다.

제도 시행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뜨거운 것은 국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존엄한 마무리에 관심이 많았고, 환자나 그 가족들이 연명의료에 관한 기준이나 절차의 마련을 기다려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와는 달리 임상 현장에서는 적용하고 운영하는 과정에 대한 우려도 크다.

법 시행 초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의료기관의 참여가 저조하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이행을 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등록해야 한다. 3월 16일 현재 윤리위원회를 설치한 의료기관은 118곳으로 아직 매우 적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고 있던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였지만, 의료기관이 윤리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아서 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인에게는 대상이 아닌 환자 측의 무리한 요구도 있을 수 있고, 연명의료 중단 행위에 대한 심리적 부담도 있을 터여서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법률에 대해 의료계가 더 긍정적으로 환자를 위해 최선이 무엇인지를 숙고하고 배려하였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이 제도가 자리 잡는 일뿐 아니라 사람들이 삶의 한 과정으로써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마무리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도록 더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도 필요하다. 이 법을 시행한 지 한 달 남짓(지난 3월 16일까지) 통계로써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이행한 사례를 보면,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이행을 한 경우가 약 35%, 가족 2인 진술에 의한 의사 확인이 약 25%, 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한 이행이 약 40%에 달한다. 법 시행 초기라서 미처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를 밟기 어려웠겠지만, 가족 전원 합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닌지를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와 의료계가 아직 환자 본인보다 가족을 중심으로 결정하는 문화에 익숙해 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연명의료관리기관’(이하 관리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병원에서 의료인이나 가족 중심 결정 문화에서 환자 중심 결정 문화로 전환하기 위하여 일반인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교육과 홍보를 할 계획이다. 또 의료계 일각에서 지적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과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에 대한 우려와 미비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할 것이다.

다행히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지난 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몇 가지 불합리한 점을 해소하였었다. 심폐소생술, 혈액투색,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으로 국한되었던 연명의료의 대상이 확대되고, 원인 질환에 상관없이 말기환자는 누구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의료계에서 가장 반발하였던 처벌 규정도 대상이 아니거나 의사에 반하여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경우에만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완화되었다. 더불어 적은 예산과 짧은 준비 기간으로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이 완벽하게 마련되지 못하였지만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개선하고 있다.

죽음 관련 인식·문화 바뀌어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통해 우리나라는 보라매병원사건 이후 20년만에 연명의료와 관련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랜 논의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이 법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논의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작은 합의를 이루었지만, 앞으로 추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 산적해 있다.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에서 의료계와 정부 그리고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누구도 이견 없이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환자의 뜻에 반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를 위해 논의를 통하여 죽음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돌아보고, 나 또는 우리 가족, 나아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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