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흠
인제대 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대한의사협회 전 보험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2017년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 보장성 강화 정책을 서울성모병원에서 직접 발표했다. 사실 최근 들어 대통령이 보건의료정책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발표한 적은 없었다. 소위 '문재인 케어'(이하 문케어)라 불리는 이 보장성 강화 정책은 “건강보험 하나로 큰 걱정없이 치료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정책이 발표된 지도 어느덧 8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의료계는 수차례의 대규모 장외집회 및 철야 릴레이 투쟁들을 이어 왔다.

무슨 일일까? 국민들을 의료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게 하자는데 의사들이 워낙 나쁜 사람들이라 질병으로 고통 받은 국민들에게 높은 의료비까지 부담시키려는 걸까? 아니면 좋게 포장된 문재인 케어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이를 알리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려 하는 걸까?

의료계는 문케어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투입할 건강보험료 재정이 불투명하며, 비급여 추계도 의료계의 예측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2018년도 예산에서 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은 정부안보다 삭감됐다. 정부안에 5조4201억 원으로 돼 있던 건강보험 가입자 국고지원액이 국회 예산심사를 거치며 2200억원(4%) 줄어 5조2001억 원으로 확정된 것인데, 건강보험 수입이 53조3209억원일 것으로 예상했을 때 정부가 내주는 돈이 9.8%에 그치게 돼 법정기준인 14%를 크게 밑돌게 된다. 국고지원율이 10%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건강보험 국고지원이 법에 명문화된 2006년 이후 처음이다. 매년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 108조에 따라 국민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20%를 국고로 지원해야 하는데 항상 이에 14%대 전후로만 지원하고 있어 오랜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률을 70%대까지 끌어올리는 ‘문케어’ 역시 실행 가능하냐는 의문이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5년간 30조6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인데, 건강보험이 쌓아둔 흑자 21조원의 절반 가량을 활용하고, 거기에 국고지원을 늘리고 보험료율을 올려 나머지 재원을 충당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3% 수준으로 예상됐던 내년 건보료 인상률은 2.04%로 결정되었고, 삭감된 예산 때문에 국고지원까지 줄면 보장성을 높일 재원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더구나 비급여 조사는 '종별 층화표본추출' 방식으로 1800개 표본 병·의원을 선정해 구했다고 하나 이 역시도,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비중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의료계는 지적한다. 투입재정도, 비급여 규모 추계도 모두 불투명한 상황에서 복지부는 3600개 비급여를 제외한 초음파, 상급병실료, MRI 등의 급여화 로드맵을 의료계와 상의 없이 발표했다. 이런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다 재정이 고갈되면 의료계는 의약분업시 재정안정화 대책이라는 의료계의 희생을 가져왔던 아픈 추억이 있기에 선뜻 동의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예비급여의 실체 정확히 알려야

둘째, 예비급여의 실체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예비급여에는 '급여'라는 말이 포함돼 있고, 국민들은 급여라 하면 20~30%만 부담하면 대부분 건강보험료 지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본인부담률이 90%까지 상회하는 제도를 '급여'라 하니 실제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기관의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예비급여 체계로 전환되면 모든 의료행위가 의료계에서 신뢰하지 못하는 심사평가원으로 넘어가고, 이에 대한 간섭 또는 심사 조정이 있을까 우려한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예비급여는 모니터링만 하고 삭감하지 않는다고 하나 이것이 언제까지 지켜질지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 비급여는 비급여인 이유가 있다. 비급여는 미용·성형 등을 제외하면 비용효과성이 어느 정도 있으나 재정문제로 건강보험에서 지원이 안 되는 것과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비용효과성이 있다면 급여화를 우선순위에 따라 보장성 강화하는 것에는 의료계 또는 국민들과의 합의하에 진행하는 것에는 반대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비용 효과성이 없는 경우에는 선택적으로 의료진이 환자에게 동의를 구한 후 일정부분의 효과를 기대하고 시행하는 것인데 이를 급여화 한다는 것은 보험원리에 부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각한 재정부담을 가져올 것이다.

넷째, 의료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혁신적이고 안전하고 유효한 의료기술이 처음 들어오면 일반적으로 높은 가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비급여로 이런 혁신기술의 가격을 통제하게 되면 신의료기술 도입에 저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대한민국 의료 발전의 저해요인이 될 것이다.

다섯째, 의료전달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비급여의 급여 확대는 상급의료기관 쏠림을 가중시킬 것이다. 최근 선택진료비가 축소 및 폐지되고 나서 상급병원에 환자 쏠림 현상이 가중됐다. 소위 말하는 빅5는 쉴새없이 MRI를 찍고 환자들은 너도 나도 서울로 간다. 환자 쏠림현상은 의료기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중시키고, 거기에 의료진의 빈부 격차 현상을 만든다. 실제 지방대학병원에서는 오래전부터 암수술 개수가 줄고, 다 서울에서 수술하고 내려온 환자들을 받는 형태라고 하소연 한다. 지역에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환자들을 서울권으로 뺏기다 보니 의료인력도 지역에서 서울로 떠나고 이는 의료인력 양성, 지역사회내 의료전달체계, 취약층의 접근성 등에 나쁘게 작용한다.

여섯째, 고가의 비급여를 재정 고려 없이 급여화 하면 공보험에 과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건강보험의 급여화 원칙 중 하나는 최소급여의 원칙(national minimum)이라 하여 공보험 혜택을 너무 과도하게 확대하면 국민들이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해 건보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국민들이 moral hazard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머리 아픈 환자가 “MRI가 급여화 됐으니 MRI 처방해주세요”라고 했을 때 의사 입장에서 거절하기 쉽지 않다. 거절했다가 드물게 2개월 후 뇌종양이 발견되면 의료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또 2~3인실까지 급여화가 되면 너도 나도 상급병실을 이용하려 하고 의료 이용의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다.

이 이외에도 현재 건강보험제도의 대표적 문제인 3저(저부담-저급여-저보장) 문제, 심사평가원의 심사에 대한 불만 역시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현재의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고 이상향만을 쫓는 복지부를 신뢰하기 힘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의료계와 같이 가는 정책 기대

일부에서는 ‘의료계가 반대부터 한다’고 비판하지만 위에 열거한 문제들은 분명 충분히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다. 너무 의료계의 걱정을 기우로만 또는 복지부의 불신으로만 치부하기엔 그간 의료계와 복지부와의 반목의 시간이 길었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이제라도 일방통행 정책보다는 의료계와 같이 가는 정책을 펴길 기대해보며, 더 이상 ‘선 시행 후 보완’이라는 전근대적인 정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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