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언젠가부터 작은 모임이든 큰 모임이든 기념사진을 찍을 때면 오른팔을 높이 올리면서 ‘파이팅’을 외친다.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우렁차게 외쳐대는 것이 사뭇 처연할 정도이다. 누구와의 또는 어느 집단과의 투쟁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나 또는 우리 자신의 나태, 실망, 패배의식 등을 극복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일상에서 웃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할 터인데, 이렇게 매사에 싸움을 다짐하니 사회가 갈등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은 하루에도 몇 번씩 ‘파이팅’을 외칠 것이다. 몇 년 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들도 이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것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다. ‘얼마나 대한민국 사회가 분열되고 대립되었다고 생각했으면 이런 명칭의 위원회를 만들었을까’ 하다가도 투지를 다지는 사진 속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이런 모습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하트 모양을 하거나,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엇갈려 사랑의 모습을 하라고 주문한다. 필자도 최근에 그런 사진을 찍게 되는 일이 간혹 있다.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소통과 화합의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는 희망의 싹을 엿보게 된다.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서로 배려하는 선진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예전과 달리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 동메달에도 열광하였다. 경기 중 넘어져 등수에 들지 못했을지라도 국민들은 그들이 보인 열정에 박수를 보내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올림픽에 참가했던 외국인들이 우리의 치안상태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살기 좋은 사회란 모든 사람이 남녀, 빈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접받는 사회이다.

사정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한다.

최근 ‘미투(#Me Too)운동’ 이야 말로 대한민국 사회를 단번에 바꾸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여성을 성적으로 희롱하거나 폭행하는 등의 행위들이 그동안 파묻혀 있었다. 이를 수치스러운 일로 또는 공론화하는 것이 조직의 신뢰를 깨는 행위로 몰아 붙여 질까봐 겁을 먹고 혼자만의 비밀로 꽁꽁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있다. 떳떳하게 밝힘으로서 반복되는 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어 놓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고무적인 것은 국민들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성원을 보내는 것이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가해자나 사기꾼으로 몰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도 댓글로 피해자들을 비난하기도 하나 여론이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미투 운동은 그저 한 때의 회오리바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끝까지 가해자가 밝혀져 처벌 받는다는 믿음이 확립되어야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미투운동 기세에 힘입어 학교폭력, 직장상사의 부하에 대한 폭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도 이 기회에 청산되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발상, 피해자의 폭로가 직장의 신뢰 추락 등을 이유로 그대로 묻혀버린다면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다.

필자의 경험을 소개한다. 몇 년 전 필자의 아들이 또래 학생으로부터 폭언과 따돌림을 받은 일이 있다. 아들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가해 학생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조차 공포로 느낄 정도였다. 학교 폭력위원회 회의 출석에 앞서 필자는 학교당국과 가해자의 입장 등을 고려하게 되었다“. 위원회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지금 같으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합니다”라고 발언하였을 터인데. 성적 폭력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적 희롱이든 이런 나쁜 행태가 우리 사회에 발 붙여서는 안 된다.

강력하게 대응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과 나의 자녀들이 희생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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