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시각이란 말에는 ‘사람은 한 눈에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뜻은 한 사물을 볼 때 착오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사람마다 가진 편견을 더하고, 선입견까지 보태면 한 사물에 대한 인식이 천차만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주변 환경 영향을 더하면 착시 효과까지 생긴다. ‘내 눈으로 봤다’고 다 본 게 아니라는 말이 맞다.

올해는 의사단체 수장의 자리를 새로 뽑는 해다.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위기’라는 한 가지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시각과 해법을 가진 여섯 명의 후보가 나왔다. 후보의 연령대도 3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각 후보의 활동 배경도 다양하고, 지지 세력도 다양해 보인다. 우리의 위기를 돌파해내겠다는 의지는 모두들 굳건해 보인다. 출신 지역도 다르고 출신 학교도 다르니 늘 어느 선거에서나 등장하는 지연·학연을 거론하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비난 받아 마땅할 행태를 언론은 무슨 대단한 것을 알아낸 양 논평까지 달아 보도한다. 필자가 욕은 했지만 그래도 언론에 보도된 쓸 만한 통계가 있어 언급해본다.

2000년 이후 치러진 회장선거가 8차례 있었는데 임기를 제대로 끝낸 회장이 33대 김재정 회장, 36대 경만호 회장, 39대 추무진 회장 셋뿐이고, 34대와 37대 회장은 임기를 마치지 못해 보궐 선거를 치러야 했다. 임기를 마친 회장들도 재임 기간 내내 온갖 내부의 문제와 외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견으로 제대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선거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원들의 투표율은 늘 30% 미만이다. 회비 납부 비율이 워낙 낮으니 유효투표권자 수가 적을 수밖엔 없다.

10% 유효득표를 못해 회장 출마 기탁금을 찾아가지 못한 후보도 꽤 있어서 그 돈의 합이 2억 가까이 된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에서 최대 득표수가 6300표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선거도 후보가 여섯이니 회원 과반의 지지를 받고 당선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어 보인다. 유효 투표의 반에 가까운 득표라도 봤으면 한다. 기탁금도 모두 되찾아 가기를 바래본다. 낮은 지지율은 회무 추진을 힘들게 할 것이다.

‘13만 동료 의사 여러분!’ 이라고 외치는 후보자들이 애처롭다. 이런 저런 이유로 회비 납부를 거부하는 회원이 많다. 3년 연속 납부를 하지 않으면 투표권이 상실되는데, 이 기간을 짧게 하자는 의견도 많다고 한다. 의협 정관에 보면 회비 납부는 회원 의무 사항이다. 의무를 안 하는데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부당하다. 이번 출마한 후보 중엔 납부 날짜를 지키지 못한 후보도 있다던데, 이를 그냥 넘기는 모양이다. 툭하면 법원에서 보자는 회원이 유독 많은 우리 협회이고 보면, 후에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

평생 한 번도 기한을 넘기지 않고 회비를 납부한 회원도 많다. 그런 회원들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자유의사이고, 의사표현의 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회비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의무를 해태한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문제인지…. 여기에서 후보자들이 시각 차이를 낸다면 의협의 앞날은 밝지 않을 것이다.

의협은 땅 팔아서 운영하는 조직도 아니고, 기부금 받아 운영하는 조직도 아니다. 회비가 걷히지 않는 단체가 제대로 운영 되는 기적과 같은 일을 의사협회가 이루어 낼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회비도 걷히지 않는데 의욕에 차서 하겠다고 제시하는 일은 많다. 개인 돈으로 할 것이 아니라면, 회비를 내지 않으려는 회원들의 마음도 살필 수 있는 회장이 당선 되기를 바란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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