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2월 6일 혈액 수급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대전세종충남 혈액원을 방문하였다. 1년 중 설 명절 전후에 혈액수급 상황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겨울 방학과 한파, 감기 환자 증가로 헌혈자는 평소보다 많이 주는데, 의료기관에서는 방학과 설 명절 전에 수술이 몰려 혈액의 수요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이 혈액원에서 보유해야 할 혈액은 적정 보유량(일일 공급량의 5배 수준)보다 모자라는 4.2일분 정도의 상황이었다.

혈액원에서는 헌혈한 경험이 있는 390만 명의 개인과 1,110여개 곳의 헌혈약정 단체에 헌혈 동참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한 방송에 헌혈 참여 자막을 송출하는가 하면, 헌혈의 집 운영시간을 연장 하고 헌혈 후에 지급하는 기념품을 추가 증정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의료기관에서 요청한 혈액 수요량 중 일부를 제한해 공급하여, 적정 보유량의 84%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 헌혈율은 ‘17년 5.7%로 해외 선진국보다도 높은 편이다. 참고로 미국은 3.9%(15년), 일본 4.0%(15년), 프랑스 2.4%(16년), 핀란드 3.7%(16년), 싱가포르 2.2%(16년), 호주 5.7%(15년)에 불과하다. 통계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헌혈량이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왜 동절기에는 혈액 수급의 어려움이 반복되는 걸까? 그 이유는 특정 연령대에 헌혈을 의존하는 구조와 외국에 비해 혈액 사용량이 많기 때문이다.

권덕철 차관 대전세종충남혈액원 방문

먼저 헌혈자의 구조를 보면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30대 이상 중장년층 헌혈자가 전체 헌혈자의 29%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76%, 프랑스는 65%나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10~20대가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겨울방학이나 명절 연휴, 시험기간 등에는 혈액 수급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대 이상 헌혈자가 ‘16년 23%에서 ‘17년에 29%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반갑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젊은 층 인구가 줄어들고, 혈액을 필요로 하는 고령층 인구는 점점 늘어날 전망이라 중장년층의 헌혈율이 더 빨리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 우리나라는 1년 내내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그간 정부는 헌혈의 집 확대 및 혈액검사 장비 개선 등에 1,338억 원을 투자하였다. 지난해부터는 직장인들을 위해 혈액원 차를 이용하여 헌혈의 집으로 데려오는 픽업서비스도 시작하였다. 인력을 더 채용하여 주말에 운영하는 헌혈의 집도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장년층의 헌혈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다음으로는 외국과 비교 시 많은 혈액 사용량이다. 총 공급량을 인구수로 나누어 인구 당 적혈구제제 공급수로 단순 비교 시 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천명 당 41팩인데, 캐나다는 21.1팩, 호주는 27.0팩, 네덜란드 25.3팩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정부가 혈액 사용량에 대한 관심과 수혈의 적정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유로 정부는 올해부터 지금까지 헌혈 인프라와 안전한 혈액공급 시스템의 기반을 유지하되, 안전하고 적정한 양의 수혈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수혈의 적정성을 평가하고자 한다. 올해는 전문가들과 함께 수혈 적정성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자 한다. 이후 시범적용과 보완을 거쳐 2020년 본격적인 평가를 시행할 계획이다. 더불어 혈액사용이 많은 임상 분야를 대상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분야별 혈액사용 적정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의료인에게 제공할 생각이다. 더불어 안전하고 적정한 혈액 사용을 위해 애쓰는 의료기관에는 인센티브도 제공할 예정이다. 혈액을 처방하는 의료인의 적극적인 공감과 협조를 기대해 본다.

국민들이 무상으로 기부한 혈액은 한 방울도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 소중한 혈액을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나누어준 헌혈자들에게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리고 꼭 필요한 환자가 혈액이 부족하여 수술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다 함께 노력을 해야 한다.

혈액 수급 상황을 점검한 뒤에 중장년층 헌혈율에 보탬이 되고자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하였다. 헌혈도 하고 헌혈자 기념품도 기부하고 나니 이중삼중의 기부가 한숨에 이루어졌다. 나누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크다고 했던가… 혈액원을 들어갈 때 무거웠던 내 발걸음이 나설 때는 한결 가벼워졌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