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측정 방식과 전자혈압계 역할

다양한 환경에 따른 혈압의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이 직접 혈압을 청진기로 측정하는 방법은 적합하지 않다.
진동법을 이용한 전자혈압계는 정밀성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신진호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청진기 코로트코프음을 들으면서 수은주 혈압계를 읽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혈압은 측정 원리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의학연구의 관점에서 혈압 측정은 매우 중요하면서 까다로운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인구집단의 건강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혈압 측정의 오류가 커지게 되면 집단의 생존율과 관련된 다양한 지표의 예측력이 왜곡될 수 있다. 왜냐하면 혈압의 높이는 인구집단의 생존율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혈압은 시시때때로 계속 변하고 있는 지표이기 때문에 측정치의 변동 현상이 혈압 고유의 변동성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려면 반드시 측정 행위는 정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혈압의 측정 행위뿐만 아니라 혈압의 측정 조건도 혈압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므로 측정 전에 조건을 안정적이고 동일한 조건으로 통제하여야 한다.

그런데 혈압은 사람이 직접 듣고 수치를 판독하는 검사로서, 측정 행위에 대해 측정자내 또는 측정자간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표준화작업을 시행해야 하는데, 적당한 크기의 단일 집단에 대한 관찰 연구 목적으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그러나 측정대상자 수가 매우 많거나 전 세계적으로 여러 집단이 다기관으로 연구를 시행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혈압에 관한 연구 중 특히 약제에 대한 연구는 위약효과가 매우 뚜렷하기 때문에 대부분 위약대조 무작위 임상연구로 수행되며, 임상연구에 있어서는 많은 대상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약제의 연구에 있어서 약물 투여 전후로 혈압의 변화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측정자 내 일치도가 명확하게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임상연구에 있어서는 측정자간 일치도가 추가로 확보되어야 한다.

◇청진법, 표준화하기 어려워= 이러한 상황에서 청진법으로 수은주혈압계를 이용하여 혈압을 측정하려면 혈압측정자의 표준화 작업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역학적인 연구라 하더라도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청진법을 이용하여 국가단위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것과 우리나라나 대만과 같은 크기의 나라에서 청진법을 이용하여 혈압을 측정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는 이유가 이러한 혈압측정의 표준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동법을 이용한 전자혈압계는 제조공정상의 수율과 질 관리상의 문제가 없다면 비록 정확성에서 약간 뒤떨어지더라도 임상시험에도 더 중요한 정밀성(precision)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실제 글로벌 임상연구에서 진동법 자동혈압계가 쓰인 연구로는 Hypertension Optimal Treatment(HOT)가 초기 연구였고, 그 이후 대부분의 글로벌 임상연구는 최근의 SPRINT 연구에 이르기까지 청진법을 이용한 수은주 혈압계가 아닌 진동법 지동혈압계를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가 정확성(accuracy)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정밀성(precision)의 문제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혈압의 측정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측정 환경이다. 혈압은 의사가 측정한 혈압과 간호사가 측정한 혈압이 서로 다르고,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나 직장에서 측정한 혈압이 다르고, 낮에 측정한 혈압이 밤에 측정한 혈압과 다르다.

◇전자혈압 측정 불가피 이유= 이러한 다양한 환경에 따른 혈압의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이 직접 혈압을 청진기로 측정하는 방법은 적합하지가 않다. 설사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기계가 청진음을 분석하여 혈압을 측정할 수 있다 하여도 신체활동 중에 혈압을 측정하려 한다면 청진음에 포함된 소음을 구분해 내는 훈련을 먼저 시켜야 할 텐데, 사람이 하기에도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다양한 측정환경에서 측정된 혈압에 대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진동법 자동혈압계를 이용하게 된다.

이렇듯 진동법 자동혈압계가 장점이 많은데, 왜 청진기를 이용한 청진법 혈압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진동법 자동혈압계는 수은을 사용하지 않는 전자식 압력계와 진동을 측정하는 커프와 압력장치, 그리고 압력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자동혈압계의 구성에 있어서 전자식 압력계는 Wheatstone bridge라는 매우 안정적인 저항회로를 이용하며, 오차는 1mmHg 미만으로 매우 정확하며, 아주 저렴한 기기도 많다. 압력계의 정확성은 수은주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눈금이 1mmHg 단위이기 때문에 error의 크기도 적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진동법 자동혈압계의 부정확성은 압력장치와 압력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의 문제 때문인데, 이것이 기기 회사의 기밀에 해당되므로 공개되지 않고 있어서 임상가 입장에는 개개인의 환자에서 어떻게 압력이 결정되는지 볼 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고, 측정오차가 언제 발생하는지 감시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져 있지 않다. 검증 시험 조건에서 정확성이 입증되었으니 그냥 믿고 쓰면 된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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