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측정의 역사와 수은

신진호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혈압을 측정하는 진료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나 성인병에 대한 진료를 받을 때는 빠지지 않고 반복되고 있지만, 혈액검사나 엑스레이 또는 초음파 검사와 같은 영상검사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의학에서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는 영역이다.

혈압을 측정하는 것은 환자를 진찰하는 일종의 신체진찰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혈압 측정 결과로서 별도의 혈액검사나 영상검사 없이도 즉시 고혈압을 진단하게 되고 곧이어 약물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대부분 평생 동안 혈압약을 복용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수도 파이프 안에서 흐르는 물의 압력을 수압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혈압은 혈관 속에서 흐르고 있는 혈액의 압력을 말한다. 중세영화에서 참수형을 당하는 죄수의 목에서 피가 공중으로 솟구치는 장면 역시 혈압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초 혈압 측정한 헤일즈= 최초로 혈압을 측정한 영국의 Hales 목사는 말의 목동맥에 기다란 관을 꽃아 관을 따라 혈액이 수직으로 247cm까지 솟아오르는 것을 기록하였다. 말은 혈압을 측정한 후 목에서 출혈이 계속되어 사망했을 것 같기에 인체에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손목 동맥에서 맥박이 만져지는 것에 착안하여 맥박이 만져질 때 손목동맥을 누르는 압력을 혈압값으로 바꾸어 표시하는 방식으로 혈압을 측정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즉 맥박의 진동을 혈압으로 표시하는 소위 진동법으로 혈압을 표시한 것이다. 맥박을 표시하는 방법이 발달하게 되자 진동법에 의한 혈압 측정은 맥박의 진동이 가장 강하게 관찰되는 압력이 평균혈압과 일치한다는 원리에 입각하여 평균혈압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Riva Rocci에 의해 윗팔을 압박하는 압박대가 개발되고 압박대의 너비가 점차 현재 사용하는 크기로 넓어지면서 간편하게 혈압을 측정하는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압박대의 압력을 최대로 올렸다가 풀어줄 때 맨 처음으로 박동이 만져지는 지점의 압력을 수축기압으로 측정하는 간편한 방법이 쓰이게 되었다.

그러면 혈압을 측정할 때 압력을 측정하는 압력계에 수은주를 맨 처음 도입한 사람은 누구일까? 혈류역학과 유체역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한 프와쥬히(Poiseuille)는 특이하게도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수은주를 혈압을 측정하는 압력계로 제안하여 왕립의학회로부터 금메달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수은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직경이 2mm 정도 되는 혈관에는 직접 관을 꽂고 수은주에 연결하여 침습적으로 혈압을 측정하여 직경이 작은 동맥에도 혈압이 유지되는 현상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몇몇 생명보험회사는 보험가입자를 대상으로 이미 혈압을 측정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첫 맥박이 만져지는 시점의 압력으로 수축기압만을 측정하였다. 수축기압에 의한 정보만으로도 이미 혈압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질 수밖에 없었고 별다른 치료법이 없던 당시에는 대략 혈압이 140/90 mmHg이상이 되면 사망률이 2배 정도 증가한다는 보험회사 내부 보고자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러일전쟁에 외과군의관으로 참전 중이던 Korotkoff는 청진기를 이용하여 위 팔의 압박대의 압력이 낮아질 때 잡음이 들리는 현상을 발견하고 혈압과의 관계를 연구하여 맨 첫음이 들리는 지점이 수축기압이고, 소리가 사라지는 지점이 확장기압임을 발견하였다. 100년 이상 이때 개발된 방법은 임상의학 영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진단법으로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혈압측정 장치의 공로로 의사의 측정과 판정만으로 고혈압은 즉시 진단되는 몇 안되는 질환 중 하나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법이 없던 시절에는 매우 우울한 진단을 받는 것이고, 혈압약과 같은 수단이 나온 후에도 혈압약이 혈압을 완치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 조절하는 기능만 하기 때문에 의사 앞에서 혈압을 측정받는 환자의 심정은 상당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수은주혈압계 역사속으로= 그러나 이와 같이 오랜 기간 인류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기여하였던 수은주 혈압계는 2020년 이후로는 수은주혈압계는 전면적으로 제조 및 사용이 금지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2013년 수은에 의한 환경오염으로 인체에 발생하는 미나마타병의 발상지인 일본의 미나마타에서 열린 UN회의에서 2020년부터 수은주 혈압계를 금지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이 결정을 지지하고 수용하였고, 우리나라도 이 규약에 가입하였기 때문에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다.

수은주 혈압계의 퇴출을 계기로 그 동안 너무나도 흔해서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혈압계의 작동원리와 수은의 역할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부에서 수은주 혈압계의 퇴출을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은 혈압계가 작동하는 기본적인 원리와 수은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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