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의료는 흔히 바이오의 일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도 의료 R&D는 바이오 R&D 영역에 묻혀있고, 의료산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차세대 성장 동력도 바이오 경제라고 불리고 있다. 의료산업화 관련 예산은 미래 6대 유망기술이라고 6T(IT 정보기술, BT 생명공학기술, NT 나노기술, ET 환경공학기술, ST 우주항공기술, CT 문화콘텐츠기술)에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

과연 의료는 바이오의 일부인가. 혹시 바이오가 의료의 일부는 아닌가? 둘 다 맞다. 바이오는 기술 중심의 접근이고, 의료는 목적 중심의 접근이기 때문이다. 의료와 바이오는 위치하는 차원이 서로 다르기에 의료 산업화는 평면적 사고가 아닌 입체적 사고를 통해야 길이 보인다.

기술 측면에서는 바이오 기술의 일부가 의료에 활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줄기세포, 유전체, 단백질 등을 활용하는 바이오 신약이나 맞춤 혹은 정밀의료영역이다. 그런데 목적 측면에서 볼 때, 사람을 살리는 의료 현장에서 바이오기술의 역할은 일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의료기기산업은 IT 영역에 가깝고,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서비스 영역은 기술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더구나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 생명기술과 초연결기술의 융합이라고 볼 때, 바이오는 의료를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아픈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과학(Science of Medicine)에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총괄 관리하는 헬스케어(Art of Healthcare)로 발전하면서, 의료산업 또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혁신과 합해져서 4차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면서 핵심주체로 기대되고 있다. 오송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재단의 로고를 K-Bio에서 ‘K-BioHealth’로 변경하였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일반국민들에게도 보건(health)과 복지(welfare)는 서로 다른 가치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의료계와 유관부처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되던 화두였기에 이러한 개념이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복지가 제대로 되려면 보건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보건 분야에서는 제약과 의료기기 같은 가치중립적인 기술 산업화 요소를 육성하면서, 동시에 서비스 영역에서도 치료과학 중심의 민간의료와 예방과 재활을 중시하는 공공의료가 서로 공존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은 오랜 기간 민간의료가 지켜왔다. 그 과정에서 치료의학이 불균형적으로 비대해진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의료의 특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의료의 공공성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의료기관이 갑자기 민간 의료기관과 무한 경쟁하는 형태를 보이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민간의료의 공로와 희생을 기억하면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동시에 의료계도 병원사업과 의료산업의 차이와 구조적 연관성을 이해하면서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국내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집단 지성을 발휘해 본다면 의학공부 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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