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나이는 들어가는데 살길은 막막하고 유일하게 마음 붙인 애인과 이별한 여자가 병원에 왔다. “선생님. 전 기댈 곳이 없어요. 더 나이 들어 추해지기 전에 차라리 지금 죽는게 나을 것 같아요.”

내 어설픈 지지가 현실적 곤궁을 채워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겁니다. 조금만 안정을 취하면서 같이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라고 설득했다.

내 끈질긴 권유에 환자는 안정제와 항우울제를 처방 받았고, 오늘부터 먹기로 했으며, 심리분석상담까지 받기로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 환자의 신발은 영종대교에서 발견됐다.

CCTV에는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 놓고 뛰어내리는 여자의 뒷모습만 남았다. 되레 의사인 나를 안심시킬 정도로 치료를 약속했던 환자는, 바로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적지 않은 우울증 환자가 치료 중에도 돌연히 자살을 택한다.

자살은 '병(病)'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류 스타 고(故) 샤이니 종현은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다’고 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유에 대한 분석이 많지만, 故 종현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우울증’이 낳은 또다른 병마(病魔, 병을 악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자살’ 이라는 병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사람들은 리비도(libido, 살고자 하는 본능)를 가진다. ‘에라 이럴바 차라리 죽자’고 생각해도 막상 옥상에 올라가 까마득한 아래를 보면 다리가 벌벌 떨려 내려오게 된다. 하지만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울증에 걸린 뇌는 활력 호르몬이 현격히 줄어든다.

편도체 등 감정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뇌부위 기능이 무뎌지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부정적인 이야기로만 과거를 편집한다. 합리적인 판단을 돕는 전두엽이 마비되어 희망적 미래는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는 죽어야 할 이유가 합당해지고, 죽음 앞에 목도할 고통이 두렵지 않다. 이것이 삶의 의지를 무기력하게 하는 ‘자살’이라는 ‘질병’의 병리(病理)다.

병(病)이라면 예방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다. 자살 선행 원인은 대부분 우울증이다. 우울증 치료는 자살을 막는 필수적이고 최소한의 방법이다. 중증 우울증 치료에는 항우울제가 꼭 필요하다. 우울증은 환자의 의지가 약해서 걸리는 것이 아니라 뇌를 무기력화 시키는 병이 생긴 것이다.

우울증 약은 마비된 뇌호르몬이 회복되는 것을 돕는다. 하루라도 치료를 미루면 손해다. 하지만 이것으로 자살을 막기엔 역부족(力不足)이다. 마음 붙일 곳 없는 환자는 부정적 사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훨씬 높다.

‘요새 힘들지’라는 말해 줄 수 있는 한사람이 자살의 길목을 막는 마지막 제어 장치다. 아침밥을 차려 주신 어머니가, 말 없이 커피를 건네는 친구가 죽음을 찾던 발걸음을 되돌리게 한다. 문제는 도와주려고 해도 누가 힘들어 하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움 요청(help sign)’을 하지만 ‘나 죽고 싶어’ 말하는 경우는 일부다. 언뜻 스친 깊은 한숨, 머뭇거린 말이 그들이 보내왔던 신호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힘들다는 티 내기 어려워 한다. ‘밝은 사람인 줄만 알았고 전혀 눈치 못챘다’고 회자되는 경우가 더 많은 이유다. 만성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그렇다. 오랫동안 마음의 문을 닫아 왔기 때문에 선뜻 터놓고 얘기할 자신이 없다.

우리나라를 자살 1위국으로 만든 이 무서운 병을 해결할 실마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우울증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라. 둘째, 주위 사람들의 도움 요청(help sign)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라. 심한 우울증은 자살의 절대 위험 요인이지만, 의지할 수 있는 한 명은 강력한 자살 보호 요인(protective factor)이다. ‘이만하면 참 잘했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자살을 막는 마지막 퍼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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