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균
이정균내과의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박기동 시인은 “춘천은 아무리 떠나려고 결심해도 떠나지 못하는 ‘늪’ 같은 곳”이라 했다. 강원도 산골짜기로부터 흘러내린 봄내(春川)는 북한강이 잠시 휘돌아가는 호반의 도시 춘천은 경춘선의 마지막 역이다. 의암·소양호는 밤새 물안개를 피어 올리니 1년에 250일 이상이라 산, 호수와 강과 안개의 밀어는 문인들에게는 시가 되고 소설이 되는가 싶다. 그래서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보다.

춘천에는 여행객들에겐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경춘선 열차의 낭만, 젊은이들의 MT장소 강촌의 출렁다리 추억, 안개 낀 호반의 사랑과 산책,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막국수와 닭갈비는 어느새 호반의 도시에서 먹거리로 깊게 자리 잡았다.

강원도 인제에서 흘러내리는 내린천, 한계천이 소양강으로 몰려오고 뗏목군의 성시(盛市)는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댐이 생기고 소양호에는 인제~양구를 잇는 물길여행시대가 되지 않았겠는가. 오봉산(五峰山)기암을 배경으로 서 있는 청평사(淸平寺)까지 배를 타고 찾아갈 수 있게 되었고, 절 산책로 따라 구성폭포의 아홉 가지 소리는 시와 소설의 날줄 씨줄이 되어 문학의 향기가 흠뻑 배어있는 춘천에선 산, 강, 호수의 속삭임 속에 창작의 고향이 되었다.

오봉산과 청평사(춘천시청 제공)

6·25전쟁 삼팔선 격전지 오음리고개 배후령(600m) 정상에 섰다. 배후령은 춘천과 양구를 가르는 마루금이다. 1968년 파월 장병 제10제대 36년 전의 일이었다. 꼬불꼬불 먼지는 펄펄 날리던 고갯길은 험하고, 정비도 잘 되어있지 않았던 고개였다. 배후령 정상에는 오봉산수식당, 넓은 주차장 한쪽에는 38선 비석이 서 있고, 46번 도로는 간선도로가 되어 있지 않는가. 이것이 우리의 발전상이었다. 산 정상에 서면 거대한 소양호가 한눈에 들어오고, 말끔히 단장된 오음리 고갯길이 장관이며, 북녘 화천들판도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가을 문턱에 서 있었다.

백두대간이 설악산으로 남진하기 바로 전에 살짝 미시령으로 빠져나와 양구에 사명산, 춘천에는 오봉산을 떨구었다. 오봉산은 경운산(慶雲山)으로 불리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청평산(淸平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봉산은 그 주능선상에 5개 봉우리를 지니고 있다. 배후령 방면으로부터 제1봉 나한봉, 제2봉 관음봉, 제3봉 문수봉, 제4봉, 보현봉, 제5봉 비로봉이며 정상이다.

용화산과 오봉산은 강원도 춘천시 북방을 성곽처럼 에워싸고 있다. 주능선 북쪽은 화천군 간동면이며, 남쪽은 춘천시 사북면과 산북면이다. 용화산과 오봉산은 북쪽으로는 파로호, 서쪽에 춘천호, 남과 동쪽으로는 소양강과 소양호를 안고 있다. 두 산의 정상은 은백색 화강암 암릉이다. 오봉산 정상 남쪽 청평사 쪽은 암릉으로 되어있어 암골미를 자랑하고 험하다. 주능선 남릉은 T자형이다. 가운데 남릉, 동쪽은 부용계곡이요, 서쪽은 선동계곡(청평계곡)이다. 선동계곡에는 청평사, 고려정원, 구성폭포가 있다. 여름 등산은 배후령 위 소형트럭 매점이 있는 급경사길 따라 올라가는 것이 좋고, 가을에는 소양호-청평사를 따라 남릉코스를 밟아 정상에 오르고, 오봉을 종주하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단풍철에는 제격이다.

호반 제1의 명산은 마적산(馬蹟山)이라 할 수 있다. 배후령에서 725고지 첫 암봉 칠성단 정상에 너치골로 내려 떨어지면 소양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오봉산에는 봄에 진달래와 철쭉이 분홍빛으로 수놓아 황홀경을 연출하며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배치고개에 이르고, 그 고개를 경계로 서편에 오봉산 동쪽에는 부용산(芙蓉山)으로 내려가서 봉화산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 부용산은 소박한 토산이다.

산세를 다시 살펴보면 오봉산에 서면 거대한 새가 양 날개를 활짝 편 듯한 모양으로 전개되고, 청평사에서 쳐다보면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마적산이 서편 산(우), 부용산은 동쪽 산(좌)이 된다.

소양호는 춘천시 동북쪽 동면 월곡리와 신북면 천진리 사이 북한강 지류를 막고 소양계곡을 가로질러 만든 호수이다. 제방길이 530m, 소양강댐이 있고 소양호에는 연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경춘선 열차를 타고 춘천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소양호 유람선을 타면 12분쯤이면 청평사에 당도한다. 양구 인제 43.2㎞ 뱃길, 가을에 절정을 이루고 시원한 계곡, 연인의 다정한 모습, 누구나 시인이 되고도 남는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승현선사(承玄禪師) 또는 영현선사(永玄禪師)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절 이름은 백암선원(白巖禪院)이며 참선도량이었다. 폐사 되었던 것을 문종 22년(1068) 춘천도 감창사(春川道監倉使)이개가 경운산의 경치에 감탄 그 옛 절터에 절은 다시 짓고 보현원(普賢院)이라 이름 지었다. 그의 장남 이자현(李資玄)은 선종 6년(1089) 과거에 급제하여 29세에 대악서승(大樂署丞·국악원장)에 올랐지만 관직을 버리고 청평산에서 선(禪)을 즐기며 36년간 은둔생활을 하였다.

옛날 중국 송나라에 송주라는 양반 아들이 있었는데 평안(平安)공주를 사모하다가 상사병이 걸려 중병으로 앓다가, 죽어서 뱀이 되었다. 공주도 어찌된 영문인지 중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동방이 나라 불도의 힘으로 치료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는데 공주가 오봉산에 오르러 구성폭포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고, 청천병력과 함께 뱀이 물속에 비친 여인에게 뛰어들어 뱀이 죽게 되었고, 공주병도 완쾌했다는 전설과 함께 지금도 공주탕이 남아 있다.

청평사에는 윤회(輪回)를 상징하는 회전문(回轉門)이 있다. 다른 절의 사천왕문격이다. 회전문 양 옆에는 크고 작은 회랑과 전각이 서 있다. 정교한 축대와 초석은 청평사 전성기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시설물이다.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되었던 것을 1970년대 전각, 회전문을 보수하였고 범종각과 요사체를 새로 지었다.

고려시대 청평사는 그 규모가 221칸이었다고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청평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회전문은 조선시대 제2산문으로 중문에 해당되고 중생들이 윤회전생을 깨우치기 위한‘마음의 문’이다. 홍살을 천장에 배열하였다.

소양호 전경(춘천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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