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근로 감독 강화‧실질 임금 지급 압박…병원들, ‘교육 제공 못하겠다’ 손사래

건양대 간호학과 학생들의 모의실습 모습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정부가 고교생 현장실습 전면 폐지 등 현장실습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교육을 받아야 할 실습생들이 실습할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대학생 현장실습 관리 감독과 실습생/근로자 구분 강화를 추진, 의료분야 실습기관인 일선 의료기관에서 실습생을 꺼리고 있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월 교육부는 대학생 현장실습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이슈에 대해 각 기관과 실습생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인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매뉴얼’을 제작‧배포했다.

매뉴얼에는 대학생 현장실습에 대한 운영과 이해, 규정 등을 담아두고 있으며, 특히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포함돼있다.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은 실질적으로 실습생이 어떤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구분해 업무로 인정되면 근로자, 교육으로 인정되면 실습생으로 구분한다는 의미다.

근로자로 구분되면 당연히 법적 기준에 맞는 실질 임금, 즉 최저 임금 이상을 교육생에게 실습기관이 지불해야 한다.

교육부는 대학생 현장실습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생 현장실습 전면 폐지와는 무관하다”면서도 “올해 초부터 대학생 현장실습 관리를 보다 강화하고 있으며, 현장 관리 감독과 근로자에 대한 실질 임금 지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습기관 규제 강화로 직격탄을 맞는 직역은 다름 아닌 간호 분야다. 일선에서 환자를 봐야 하는 간호대생들은 단순 업무만 반복하게 근로자로 분류돼 실습기관에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는 ‘일경험수련생 가이드라인’에 ‘교육․훈련내용이 지나치게 단순·반복적인 것이어서 처음부터 노동력의 활용에 그 주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 근로자로 구분한다’라고 명시돼있다.

이에 더해 기존에 실습기관에서 호소했던 어려움, 교육 담당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 비용 증가 등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날로 늘어나는 간호대학과 간호대학생 정원으로 인해 자체 수련병원을 갖지 못한 간호대학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심지어 교수 초빙 공고를 내는 일부 간호대학에서는 내부 전제 조건으로 현장실습할 병원 확보를 요구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결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의료기사 등 의료 관련 직종들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취업률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관련 직종들은 적극적인 현장실습이 취업의 유일한 대안이나 마찬가지인데 실습기관인 의료기관이 받아주질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실습기관이 줄어들면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실습생'이다. 교육 기회가 제한되면서 실무 경험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줄어드는 실무 경험 환경으로 인한 비숙련자의 증가는 '경험적 업무'를 중시하는 의료 분야의 경쟁력 약화까지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에 대해 의료기관을 담당하고 있는 복지부는 소관이 아니라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면허자가 아닌, 교육생이기 때문에 개입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복지부의 입장에 대해 의료계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선 긋기’라고 비판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속가능한 의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 요건인데, 복지부가 우리 담당이 아니라고 나몰라라 하면 나중엔 근본부터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상급종합병원 기준에 3개 간호대학 실습생을 유치하는 기준이 있긴 하지만, 의료질평가지원금 등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제도에는 기준 마련이 없다”면서 “더 이상 실습병원의 교육을 당연시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학생들의 교육 기회 박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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