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있으면 사회적 활동 가능하지만 국내는 사용할 의약품 없어
유럽의 경우 신속한 의약품 도입으로 환자 삶의 질 높여…한국은 환자 지원 없어

[의학신문·일간보사=김상일 기자]"유전성 질환인 혈관부종 환자들은 암 환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받고 특히 응급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이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독일 마인츠의과대학 메디컬센터 피부과 콘라드보크 교수와 서울대학교병원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가 혈관부종 환자 치료 의약품의 빠른 도입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 마인츠의과대학 메디컬센터 피부과 콘라드보크 교수와 서울대학교병원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는 최근 의학신문·일간보사와 만난 자리에서 유전성 혈관부종은 통증이 심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병이라고 밝혔다.

유전성 혈관부종의 사망 가능성은 30% 정도이지만 혈관부종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아직 사망 사례 보고가 없어 상대적으로 암 등 타 질병에 비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환자 수 또한 국내에서 확진받은 환자는 65명이지만 유병률은 5만명당 1명으로 추정할 수 있어 국내 환자는 약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진단받지 못한 환자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콘라드보크 교수는 "유럽에서는 질환의 인지도 향상을 위해 의료진과 환자단체, 제약사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기여가 있었다"며 "의료진의 경우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학술행사를 자주 개최하고 내과나 피부과학술 행사 등에서도 유전성 혈관부종 전문가가 참석해 질환에 대해 발표하는 등 의료진 사이에서 질환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콘라드보크 교수는 "희귀질환은 한번 들어서는 잊혀지기 쉽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며 자주 접할 수 있도록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혜련 교수

강혜련 교수는 "국내 경우 천식알레르기학회 주도로 유전성 혈관부종 섹션을 마련하고 최신 지견을 공유하는 한편 최근에는 질환과 관련해 교육 자료를 제작해 배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며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내 희귀질환 담당부서에 접촉해 유전성 혈관부종 관리조직을 구축 할 수 있는 기반 지원을 건의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혜련 교수는 "유전성 혈관부종 환자는 진단 후 전문의에게 정확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 질환에 대해 접해 본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종이 언제 발생할지 알지 못한다. 이때문에 환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매우 큰 편"이라며 "중증으로 발생 할 경우 환자의 고통이 매우 크고, 증상 예측의 어려움으로 환자의 불안감도 매우 높아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국내 환자들은 진단의 어려움이외에도 응급 상황에서 사용 할 수 있는 치료제가 국내에 없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다른 국가에서는 사용되는 치료제가 있는데도 국내에서는 사용 할 수 없어 환자들의 좌절감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유전성 혈관부종에 의해 부종이 발생한 경우, 결핍된 C1에스트라제억제제를 보충해주거나 브래디키닌의 혈관 확장 작용을 차단하는 치료제인 브래디키닌수용체길항제(이카티반트)를 사용 할 수 있다.

C1에스트라제억제제를 보충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수혈이있다. 혈장에 C1에스트라제억제제가 미량 들어 있기 때문에 수혈을 하면 호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어 있는 양이 미미하기 때문에 수혈을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우며 다른 사람의 혈액속에 포함된 브래디키닌 때문에 증상이 악화될 우려도 있어 사용이 널리 권장되고 있지 않다.

문제는 브래디키닌 수용체 길항제는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 국내 환자 사용할수 없다는 점이다. 후두부종이 심각해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에는 기도삽관과 같은 침습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콘라드보크 교수는 "유럽의 경우에는 후두부종이 심각하게 진행돼 호흡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 주기 어려운 경우 응급대처로서 스테로이드와 함께 브래디키닌 수용체 길항제를 투약한다"며 "후두부종이 발생했을 때는 환자가 호흡할 수 있도록 기도의 개방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추가적인 검사를 통해 후두부종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야한다"고 말했다.

콘라드보크 교수는 "유럽에서는 유럽의약품청(EMA)이 치료제 사용 여부를 허가하고 2008년 피라지르주가 EMA 승인을 받고 유럽에 출시 됐을때 독일 등에서 EMA 허가와 동시에 급여를 지원한 덕분에 빠르게 환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었다"며 "EMA 승인 직후 급여 지원이 되지 않았던 국가에서도 일반적으로 1~2년내에 환자 접근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급성발작에 대응하는 치료제 중에는 자가 투여가 가능한 치료제가 있다"며 "응급 상황시 병원을 방문을 하지 않아도 미리 처방을 받아 가지고 있다가 언제든 투여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외국과 달리 국내는 의약품이 있어도 사용할 수 없지만 국내 희귀질환관리법에는 유전성 혈관 부종환자관리에 대한 방안도 없어 희귀질환 중에서도 우선 순위가 밀리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강혜련 교수는 "올해초 질병관리본부에서 국가적 관리가 필요한 희귀질환에 대해 의견을 청취한바 있지만 안타깝게도 유전성 혈관 부종 환자관리에 대한 국가적지원은 아직 없다"며 "유전성혈관부종환자는 급성발작이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을 다 할수 있는 사람들로 20대에 유전성 혈관 부종환자로 진단 받았다면 기대 여명이 50~60년 정도 된다. 이기간 동안 치료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콘라드보크 교수

강혜련 교수는 "유전성 혈관부종을 증상이 비슷한 두드러기와 비슷한 질환으로 분류하거나 알레르기성 피부질환과 같이 심각하지 않은 질환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며 "유전성 혈관부종의 고유의 특성을 고려해 유사한 질환들과 다르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콘라드보크 교수는 "유전성 혈관부종 환우회 조직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며 " 환우회를 통해 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게 된다면 여론과 정보가 귀 기울일 것이며, 이에 힘을 실어주는 분들도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보건의료전문가는 보건의료 당국과 논의와 협상을 지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유전성 혈관부종은 환자들에게 치명적이며, 국가적 지원이 필요할 만큼 중요한 질환으로 글로벌 질환 가이드라인 등을 기반으로 유전성 혈관부종의 관리 및 치료법을 소개하고 정부를 설득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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