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미국 시골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던 중 엔진에 고장이 나면서 시동이 꺼졌다. 길가에 정차를 하고 보닛을 열어 정비차량을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어떤 친구가 차를 세우고는 “자기가 고쳐줄 테니 수리비를 내겠느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예스”하고 부탁하자 엔진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망치를 들어 어디 한곳을 두드리니까 다시 시동이 걸렸다.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으니 101달러를 요구하는 것이다. 무슨 망치질 한 번에 그리 비싸냐고 항의하자, 망치 값은 1달러이고 어디를 두드리면 되는지 아는 값이 100달러라고 하였다.

의사들의 가치는 바로 그 100달러에 있다. 의료산업화에서 의료현장의 미충족 수요(medical unmet needs)를 정확히 알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지식정보사회에서 부가가치는 know-where와 information에 있다. 물론 know-how도 여전히 중요한 요소지만, 방법과 기술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대체도 가능하다.

병원이 의사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은 의사들이 가진 정보 즉, 임상현장의 아이디어를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IP)으로 변환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디를 두드리면 시동이 걸리는지 아는 지식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남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의사의 역할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연구중심병원이라 해서 모든 의사들이 연구에 돌입할 이유는 없고, 게다가 기존 2+4년 의대교육의 특성상 기성의사들 중에 자신만의 연구 도구나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의사가 본연의 진료에 집중하면서 의료산업화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바로 아이디어에 대한 IP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진료하는 의사들이 비록 피펫을 못 다루고 전자 기계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더라도 의료현장의 아이디어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그것이 구체화되고 시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피드백을 부여하고, 전임상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에 적극 관여하고, 최종적으로 제품화되었을 때 구매를 해줌으로써 산업화 사이클이 완성된다.

다시 말해 의사들이 굳이 특허를 보유하거나 연구개발 직접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의료현장의 아이디어가 IP로 보장받게 되면 그 자체가 기술이전의 대상이 되고 창업의 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 유행하는 창업에서도 바쁜 의사들이 CEO 역할까지 고민하지 않더라도 전문경영인과 함께 공동 창업하던가 아니면 의사들끼리 작은 기술지주회사를 만들어 기존회사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해서 자기 주식지분을 가지고 기술자문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의사들에게 어려운 용어들인가? 그렇다. 그러나 의학공부만큼 어렵지는 않다. 그리고 이젠 의과대학 교육도 의료산업화를 위한 인재 배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다양한 학제와 분야가 융합되는 의료산업화에서 의사들이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리더십 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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