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반쪽짜리 결과물, 차별적 요소 없애야'…자료 없고 인력 없어 험난한 여정 예상

정신과 의료급여 정액수가 개선이 지지부진하다. 지난 3월 외래수가는 행위별수가제로 개편됐지만 정작 금액적인 부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입원환자에 대한 정액수가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료계와 환자들 모두 건강보험과 차별화된 정신수가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제대로 된 협의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의료계에서는 지속가능한 치료의 불가능을, 환자들은 ‘명백한 환자 차별’이라는 지적을 펼치고 있다.

지난했던 협의 후 결과물은 '반쪽'

2015년 가을, 정신과 의료급여 정액수가 개선을 위한 민관 협의체 논의를 위한 회의에서 복지부와 대한신경정신과학회 관계자간의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간 연구용역을 통해 도출된 정신질환 수가체계 개선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학회 측과 기획재정부와의 소통에 실패한 복지부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간의 불신만을 쌓아가고 있었다. 결국 인신 공격까지 이뤄졌던 이날 회의 이후로 더 이상 개선협의체 회동은 없었다.

이후 2016년 여름, 보건복지부에서는 한 사안을 두고 내부적으로 고심을 거듭한다. 바로 의료급여와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이 다른 부분을 일치시키는 방안이었다. 해당 사업과에서 어느 정도 검토에 들어갔던 이 사안은, 그러나 결국 차일피일 윗선에서 검토가 미뤄지다가 담당자들이 전부 보직 변경돼면서 유아무야됐다. 이후 담당 과장과 국장이 바뀐 이후인 2018년 3월 정신질환 외래수가를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과 동일하게 행위별수가제로 개편됐다.

그럼에도 불구 의료계에서는 의료 자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입원수가에 대해 행위별 수가로 변경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입원정액 자체가 낮은 수가로 묶여있기 때문에 정말 ‘최소한의’ 비용만을 들여 치료가 아닌 ‘감호’를 하는 방식으로 정신병원들이 끌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는 시민단체 등에서 주장하는 ‘의료의 차별적 제공’ 이슈와도 맞닿는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의료급여 환자들은 차별받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급여 정신질환자의 재입원률은 건강보험 환자의 재입원률을 훨씬 상회한다.

신경정신과학회에서도 정부가 행위별수가 전환에 입원수가를 제외한 것은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학회 관계자는 "외래 행위로 바꾼 이유가 입원을 바꾸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산 문제 때문에 나중에 바꾸려고 했던 것"이라며 "입원수가를 행위별수가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정책이라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복지부, 우리도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 재원 배분 권환이 없는 복지부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을 타깃으로 하는 국내 의료급여시스템은 일반적으로 현재 전국민 의무보험형태인 국민건강보험시스템에 준해 이뤄지고 있다. 같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다루긴 하지만 별도의 심사시스템을 갖춘 자동차보험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같은 방침은 복지부 내 주무관장 사업과 규모를 살펴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건강보험정책파트는 주무과인 건강보험정책과를 포함 1국 4개과 체제로 40명이 넘어가는데 반해 의료급여파트는 달랑 기초의료보장과 인원은 10명이 전부다. 즉, 의료급여시스템 자체에 대한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관리‧감독, 재정건전화, 동향 파악 등 전반적인 업무를 아우르기에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복지부의 속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복지법 홍보 영상 중 한 장면. 최근 사회에서는 정신질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관련 치료시스템에 대한 개편도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변화에 의료급여는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다.

이러한 상황은 문제를 더욱 악순환으로 이끈다. 기획재정부와의 예산 협의 과정에서 복지부가 행위별 수가 전환을 위한 근거 자료들을 다양하게 생산해야 하는데, 현재 기초의료보장과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정신질환 수가체계 개선안 연구용역 결과물뿐이다. 예산 증액을 위한 설득 자료 자체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기초의료보장과가 기재부와 그간 험난한 협의 과정을 거쳐왔다”면서 “과 운영비가 삭감되기도 하는 등 업무 담당자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전했다.

정신질환자 입원수가 전환이 상대적으로 우선 순위가 낮은 점도 걸림돌이다. 해마다 계속되는 의료급여 미지급금이 1조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금액은 대부분 추경예산으로 통과되곤 한다. 문제는 당연 지급금인 의료급여 미지급금으로 인해 다른 예산이 우선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복지부와 기재부는 일단 (안정적으로) 재정 굴리는 방안부터 생각하기 때문에 현 시스템에서 변동을 가하는데 소극적”이라며 “정신질환자 입원수가 전환은 복지부도, 기재부도 사실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입원수가 전환을 위해 대한신경정신과학회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복지부는 여태까지 시범사업에 대한 답변을 하질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은 ‘근거 자료 생산’이 답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거 자료 만들기’ 작업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경정신과 측에서는 정신질환자 외래수가를 행위별로 전환한 이후 총 청구액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즉 행위별 수가가 단순히 비용 증가만을 유도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구체적인 근거 수치는 정부가 가지고 있어 더 이상의 면밀한 분석은 힘든 실정이다.

복지부에서도 근거 자료 생산에 힘을 싣겠다는 입장이지만 인적 자원 부족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당장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의료이용실태 등도 파악돼지 않았고, 건강보험과 차별적 요소를 둘만한 근거 마련에도 실패했다. 즉, 건강보험에서 적용하고 있는 행위별 수가와 다르게 적용하는 당위성이 없다는 의미다.

복지부도 이를 인정하고 상황 개선에 최선을 다해 예산을 점진적으로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 복지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 등 구체화된 계획을 아직 마련하진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의료계의 우려는 아직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준섭 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장은 “정신질환자, 식대, 투석 환자에 대한 이슈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면서 “관련 부처과 긴밀히 협의하도록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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