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4분기가 시작된다. 이 시기엔 기업가치에 대한 각종 분석 자료가 쏟아진다. 특히 제약사별 매출규모나 순위는 최대 관심사다. 곧 어느 제약회사가 제약업계 1위를 차지했다거나, 어느 회사는 1조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다거나, 심지어 1조 클럽에서 낙마 했다거나 하는 분석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데 매년 의례적으로 생산되는 이런 분석들에 마음 한켠이 공허해진다. ‘1조클럽’이란 상징적 의미를 차치하면, 국내 제약기업과 제약산업에 남는 의미는 무엇일까.

김영주 기자

제약회사의 본업은 혁신적 신약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다. 아직 인프라가 부족한 국내 제약산업의 현실을 감안하면 좌충우돌할지라도, 글로벌 신약 개발 하나만을 생각하며 새 길을 개척하는 회사에게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현실은 어떠한가. 매출 1조 달성을 위해 자체 신약을 개발하기보다는, 외국에서 소위 ‘잘 팔리는’ 의약품을 도입해 회사의 볼륨을 키우는데만 관심이 쏠려 있다. 실제 국내 상위 제약회사들의 매출 구조를 살펴보면 50%에 가까운 매출이 도입제품에서 나온다. 한국 제약회사가 ‘제약기업’이 아닌 외국 제약기업의 ‘도매상’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기적같은 신약 라이선스 계약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한미약품은 한국 제약기업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회사의 공시 내용 등을 토대로 매출구조를 산출해 보면, 작년 한미약품 전체 전문의약품 매출 중 82.1%가 자체 개발한 의약품이다. 도입 품목 비중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9%대에 머물고 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전진하는 한미약품의 저력은 창립 이후 줄곧 ‘우리가 만든 의약품으로 승부하자’는 원칙에 천착해 온 회사의 굳은 의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제약강국은 제약회사의 ‘덩치’가 아닌 ‘혁신’에서 나온다는 명제를 충실히 실천하는 한미약품은 외국회사의 '도매상'을 자처하는 한국의 제약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8년 새해가 시작되면 올해의 매출 1등 회사가 어디가 될지에 세간의 모든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그런 관심 속에서 ‘한국도 제약강국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슬로건이 난무할 때, 우리는 조용히 한발 물러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제약강국으로 가기 위해 한국 제약회사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입으로는 제약강국을 말하면서, 두 다리는 제약 약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