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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홍승록 교수님 靈前에 바칩니다.

오호통재라 이 무슨 맑은 대낮에 청천 벽력같은 부고란 말입니까?

온가족의 슬픔과 많은 동료 및 후배제자들의 침통 속에 스승님의 영전에 서게 되었습니다.

뇌경색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신지 어연 8년 병마와 투병하시면서도 제자를 맞으실 땐 벌떡 일어나시고자 하셨던 누구보다 강인하셨던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홍승록 교수님.

여러 번의 위기의 순간을 지날 때마다 어느 날 누군가 보란 듯이 깨끗하게 완치되었던 흉부외과수술환자가 그렇듯이 스승님 역시 그렇게 회복되실 줄 믿었습니다.

거의 매일 요양병원으로 병문안을 가시는 사모님, 누구보다 효성이 지극한 자녀들, 병문안에 덩달아 나서는 귀여운 손자손녀들 이제는 만나 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 스승님의 건강상태를 여쭈어 보면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회복이 어렵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셨으나 기적같이 회복 되셨다고 즐거워하시면서 웃음 가득하셨던 사모님, 지난달까지도 생체활력징후는 정상이라며 기뻐하였던 외과의사인 차남 홍정(아주대 외과교수) 모두 눈에 선합니다.

몇 번의 고비는 가끔씩 예기치 않게 찾아오곤 하였으나 그때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기적같이 회복되시곤 하여 올해도 무난히 넘기시고 어느날 누군가 보란 듯이 깨어나시어 세브란스병원 잔디에서 많은 후배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할 수 있으리라 믿곤 하였으나 이와 같은 희망은 이제는 영원히 접어야 하는지요.

스승님께서는 1951년 연세의대를 졸업하시고 1957년 외과 전문의가 되셨고 세브란스병원 외과교실에 그 당시의 외과 부교수 이셨으며 교수로써 평탄하신 길을 마다하시고 뜻하신 봐 계시어 1971년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시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심은 우리 후배 제자에겐 커다란 축복이며 흉부외과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스승님께서는 이후 흉부외과의 분리 독립에 공헌 하셨고 국내심혈관흉부외과의 기틀을 구축하셨으며 세계, 아세아 흉부외과의 국제학회를 유치하시고 흉부외과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하시었습니다. 그 후 1975년부터 장기간 흉부외과 과장직을 역임하시면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대한 심혈관흉부외과의 이사장과 회장을 2번씩 역임하시는 쾌거도 있었습니다.

그 후 처음으로 흉부외과 전공의를 지원한 저에겐 스승님의 기대 역시 남달랐기에 더욱 심하게 채찍질 하시지 않으셨나 생각해봅니다. 흉부외과의 분리 독립으로 세브란스 흉부외과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때부터 하루하루 수술하실 때마다 모두 한국최초의 수술수식이 따라다녔다고 봅니다. 1956년 세브란스 최초의 개심수술이 시작되었고, 한국 최초의 승모판교련절개 수술 성공, 1963년 한국최초의 인공심폐기를 이용한 심방중격결손증 수술 성공, 1977년 관상동맥협착으로 가슴통증이 심한 심근경색환자에서 한국 최초의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을 성공시켜 관상동맥 수술의 새로운 장을 여셨습니다. 이 모두 세브란스 흉부외과의 위상을 드높인 쾌거라고 보이며 스승님의 부단한 노력과 집념의 소신이라 믿습니다.

흉부외과 환자의 수술 전 정확한 진단, 완벽한 수술, 중환자실에서의 철저한 수술 후 처치에 철두철미하셨던 스승님, 환자진료와 처치에 한 치의 빈틈도 허락지 않으시고 누구보다 엄격하시면서, 한순간의 잘못도 바로 지적하셨던 날카로운 직감과 정확한 가르침, 우리 모두를 감탄케 하셨습니다. 또한 새로운 수술에 대한 투지, 강인한 집념, 이 모두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하신 바람직한 스승상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저의 전공의 1년 시절 온몸이 시퍼런 대혈관전위증인 6세의 환아에서 어려운 장시간의 수술후에 수술은 잘되었으나 의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중환자실에서 호흡백을 잡고 호흡조절을 하면서, 규칙적인 앰부배깅하면서, 시간마다 흉관으로 배출되는 혈액양과. 소변양, 혈압과 동맥혈가스치를 측정하게 되었습니다. 환아와 더불어 저 역시 녹초가 될 지경이있던 고난의 과정을 마치게 된 10일째 환아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었고 시퍼런 피부색갈도 완전히 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스승님께서 저의 어깨를 치시면서 자네가 환아를 살렸네 하고 위로와 격려 하여주셨고 환아가 퇴원할 때 환아 엄마와 같이 기념사진을 촬영하여 떤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와같은 생명의 신비, 기적 같은 회복의 감동,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순간순간의 감격과 기쁨이 어렵고 고된 흉부외과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이라고 믿으며 이 모두 스승님의 몸소 수행하시는 가르침과 은혜라고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도 기적적으로 깨어나시어 세브란스병원 잔디밭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기를 바랐었는데 이제는 영원한 꿈으로 남게 되었군요.

다시금 스승님의 가르침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1978년 흉부외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고 스승님 댁을 방문하여 인사를 올렸는데 이제부터는 자네는 흉부외과 전문의로써 모든 책임은 자네한테 있네 하시면서 그동안 전공의 시절의 충고는 배우는 과정이었기에 그렇게 고생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실토하시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시고 제자를 사랑하셨던, 그러나 병원에선 그렇게 무섭도록 엄하셨던, 스승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이러한 자애로움과 엄함의 이중적인 마음갈등이 스승님의 질병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신 건 아니신지 제자로써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1950년부터 8년간 육군군의관으로 장기간 복무하시면서 투철한 애국, 애족 정신으로 무장 되신 참 한국인 이셨습니다. 1992년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을 하실 때까지 오직 한길 32년간을 참 세브란스인으로 계셨습니다. 재직시의 공적을 인정받아 올해의 교수상(1987년), 교육부장관상(1991),국민 표장(1992)을 수료하셨고 퇴임후에도 세종병원으로 적을 옮기신 후 다시 8년간을 심혈관외과장으로 환자 진료에 헌신하신 참의료인 이셨습니다.

저희 후배와 제자들을 누구보다 자애로움과 사랑으로 가르쳐 주셨던 그 정성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스승님의 기대에 한 치 어긋남이 없이 환자진료와 치료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도록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도와주시옵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스승님 못지않게 심혈관흉부외과의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을 합니다.

전공의 시절 아침 회진을 준비하고 외래 스승님의 사무실을 들렸는데 무척이나 기분이 좋으신 스승님을 뵙게 되었는데 그날이 선생님께서 다니시던 연동교회의 장로 승격시험에 합격하셨던 날 이었습니다. 그토록 가시고 싶어 하셨던 하나님 품으로 가시게 되셨으니 이제 스승님께서는 하나님의 넓으신 품에 안기시어 세속의 모든 고민을 잊으시고, 편히 쉬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2017년 9월20일

분당차병원 흉부외과 교수(연세의대 1973년 졸업)

세흉회 회장 이두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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