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의사평론가

비급여 부분을 전면 급여화로 바꾸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발표되었다. 환자들에게 부담이 되어왔던 부분이 보험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정책이 가져올 파급효과다. 환자들에게 일부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기계적 접근으로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악당 같은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의사들의 소신진료가 위축되고, 수입이 위협받고,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윤리적으로 건전해 보이지 않는다. 의료윤리의 네 가지 원칙중 하나인 ‘배분적 정의’에 합당하지 않아 보인다.

배분적 정의는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환자와 공급자에게 배분하라는 원칙이다. 이 원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의료자원을 담당하는 보험자와 정부가 의료의 가치와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의료의 가치와 특성, 치료과정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배분은 윤리적 정당성을 훼손시키다. 특히 의료자원의 배분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려고 할 때, 의료의 가치가 훼손되고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 기계적 접근 방식을 택할 때 발생하는 환자들의 요구와 진료현장의 갈등을 누가 책임을 지고 조정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실손 보험 회사만 배불려주는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 동안 대한민국의 의료제도는 의료행위에 대한 가치와 환자 안전에 대한 개념에 대해 불성실했다. 의료행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환자 안전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배려가 심각하게 부실한 제도였다. 의료가 가지고 있는 숨겨진 변수이며,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도 간과되고 있었다. 상대가치 내에 무늬만 들어 있는 상황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안전을 위해 처치와 수술, 검사 전에 의료행위에 대한 필요성과 목적, 부작용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고 결정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료법으로 설명을 잘하라고 의무만 정해 놓기만 했지, 설명을 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의 단점은 의료행위의 빈도가 많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보상이 수가에 반영되어 있지 않았을 때에 행위의 빈도가 높아지고 진료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는 치명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정부가 비윤리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책임은 의료공급자에게 돌리는 얌체 짓을 하고 있다.

이번 문재인 케어를 살펴보면 크게 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재정확보에 대한 계획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책임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의 가치와 특성, 치료과정의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정책 적용이라는 점이다. 정책이 너무 근시안적이고 정치적이다.

‘문재인 케어’가 진정 국민과 환자를 위하는 정책이 되려면 정책이 실현되기 위한 인프라 조성을 먼저 했어야 했다. 당장 눈앞에 쓸 돈이 있느니 우선 인심 쓰고 호로록 말아먹고 말 것 같아 보인다. 정부가 취할 행동이 아닌 것 같다. 성숙한 정책 제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집을 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집이 불타 없어져 버리는 데는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의롭고 신뢰가 가는 의료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안정적 보험재정 확보 계획이 제시되어야 하고,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정책이 아닌 환자의 안전과 생명이 존중되고, 윤리적이고, 소신있는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성숙한 수가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문재인 케어가 진행된다면, 당장 환자들은 자신이 내는 돈이 덜 나가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만, 실은 속 빈 강정이 될 것이 뻔하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보장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가지 수는 많지만 먹을 것이 없는 싸구려 뷔페 같은 정책이 될 것이다. 돈만 축내고 환자와 의료 공급자 모두에게 불만과 갈등만 증가시킬 것 같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자원이 적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증가할수록 우리나라 의료는 더 정의로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정의로운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을 해야 하는지 책임감을 가지고 정책을 이끌고 가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장자는 “오리 다리가 짧다고 늘리지 말고, 학이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말을 했다. 각각의 존재는 자신의 개성에 맞게 살아야지, 획일적인 틀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병의 특성과 의료의 가치를 무시한 획일적인 접근 방법은 환자들의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의사들과 환자들을 비윤리적인 환경으로 내몰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성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정책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국민을 위하고, 환자가 대우 받는 윤리적인 진료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문재인 케어’는 의료개혁의 실타래를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의 탄생 때부터 안고 있는 이러한 태생적인 문제점에서부터 풀어 가야 한다. 신뢰가 가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문재인 정부가 의지와 용기를 보여 주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