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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룡산 조무락골의 여름
이정균
이정균내과의원장·의사평론가

경기도 가평(加平)은 산보다 산과 산 사이에 수많은 계곡을 지닌 땅이다. 가평은 강원도의 속초와 같고 가평의 뭇 산들은 설악산 지역의 여러 산들과 닮았다고 말한다. 경기도에서 가평은 청평과 더불어 서울에서 별로 멀지 않으면서도 오지의 모습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던 땅이었다. 산 많고 수려한 고장산과 산 사이 수많은 계곡엔 기암절경, 명승지를 탄생시켰고 사람들의 근거지 자연부락은 계곡과 계곡 주변에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명지산이나 화악산을 오르는 길목인 적목리(赤木里)에는 이름도 생소한 거릿내(거림천), 소락포, 논남기, 임산, 가림, 용소동, 조무락골, 도마치 같은 자연 부락이 있다.

옛길은 산자락을 타고 돌고 도는 좁은 길과 그 옆으로 두세 집이나 서너 집이 옹기종기 똬리를 틀 듯 모여 살았다. 가련한 오지의 삶을 그대로 지녔던 순박한 땅 가평을‘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사람살기가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 썼고 특히, 가평군 하면과 북면 땅이 그렇다고 기술했다.

화악산은(華岳山, 1468m)은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 경계에 있으며, 경기 최고봉이다. 한북정맥상의 백운산(904m)과 국망봉(1168m)사이 937m봉(도마치봉)이 남동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상에 주능선에서 숨은 듯 뻗어있는 석룡산(1147m)을 발판삼아 불끈 솟아 오른 경기오악 중 경기도의 최고봉이다. 화악산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정중앙에 있다. 전남여수와 평북 중강진을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선이 국토자오선(동경 127°30′)이다. 그리고 북위 38도선을 그으면 두선이 만나는 곳이 바로 화악산 정상이다. 여기에다 평북 삭주에서 경남 울산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선을 이었을 때 그 두선의 교차점도 화악산 정상이다. 예부터 지역 주민들은 화악산을 가운데 중(中)자를 써서 ‘중봉(中峰)’이라 불러왔다고 전한다.

예부터 경기5악은 화악산, 운악산, 관악산, 송악산 그리고 감악산이다. 화악산의 정상은 신선봉(1468m)이다. 또 화악산 정상을 가리켜 설봉(雪峰)이라고도 하는데, 봄날 산 중턱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었음에도 정상은 하얗게 눈이 쌓여있어 얻은 다른 이름이다. 화악산은 현재 38선이 정상을 가르고 있는데 6·25전쟁 때는 격전지였던 비극을 안고 있다. 한국전쟁 이래 국가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정상 서남쪽 1㎞ 거리에 있는 제 2봉 중봉(1446m)까지 등산이 가능하다.

화악산에서 바라본 전경

화악산이 거느리는 산은 북서릉상의 석룡산, 서릉의 언니통봉(928m), 남릉의 중봉(1446m), 애기봉(1055m), 수덕산(794m), 동릉엔 응봉(1436m)이 있고, 남쪽으로 꺾여 나가는 능선 상에 촛대봉(1170m)이 있어 가히 경기 알프스로 불리는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가평천은 경기 서북부의 푸른산맥군 한북정맥과 화악산 깊은 계곡 물을 받아 흐른다. 경기 제1청정지역 골짜기다. 전원마을이다.

원주민보다 별장촌 외지인이 더 많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다.

우리 일행 심태섭 박사, 이종범 교수와 나는 경기 가평읍에서 용수목 방면으로 차를 타고 40분가량 올라가 화악산의 중심선 삼팔교(三八橋)에 멎었다.

우리들은 경기5악의 최고봉을 밟고 야생화 금강초롱꽃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삼팔교는 석룡산 골짜기 6㎞구간에 걸쳐있는 조무락(鳥舞樂)계곡의 입구다. 일설에는 조무락골을 새 조(鳥)에 없을 무(無)를 써서 새들조차 먹을 것이 없는 계곡이라 했지만, 1976년 화전민 정리 사업이전에는 67가구가 이 골짜기에 살고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터무니없는 해석이란 생각이 앞선다.

크고 작은 용소가 이어지는 조무락골은 가평천 상류지역 사투리로‘산새들이 재잘거린다’는 의미라고 한다. 석룡산 자락의 깨끗한 골짜기, 무공해 계곡, 가평천의 으뜸골짜기, 경치 좋고 조용한 골짜기 산 오르는 길에 조각넘이골, 독바위, 위방골, 사태발골등 아기자기한 계곡의 연속이다. 울창한 숲 속, 조무락거리는 산새들, 물소리 청아하고, 작은 물 모여 폭포를 이루니 선경이요, 지금도 귀에 환청으로 남아있다. 똬리를 튼 듯 폭포수 돌아 흐르는 골뱅이소(沼)와 호랑이 웅크린 모습의 복호동 폭포가 있는 세 갈레 길에서 우리는 가파른 원시 밀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중봉을 찾아 희미한 길을 더듬어 찾아 올라갔다. 복호동 폭포가 있는 지점 근처까지는 조무락 계곡에서 3㎞가량, 화악산 중봉이란 안내 푯말은 없었다. 그 길은 석룡산 길을 빌어 떠나는 평지 탐험, 야생화 길이었다.

언니통봉능선이 제일 가까운 적목리(赤木里)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朱木) 붉은 나무가 많아 생긴 지명이듯이 산행 중 고사목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복호동 폭포 샛길이 능선 바위지대를 만나면서 시야가 트이고 드디어 중봉 전망대에 섰다.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국가시설의 위용이 손에 닿을 듯 보였다. 우리를 지키는 성채 같은 위용, 가슴이 트인다. 국가안보의 늠름한 기상을 보았다. 중봉 그 정상은 2평정도, 그러나 중봉은 다른 산과 달리 축구장 크기만 했던가. 올라서는 숲 속과 바위틈에는 초롱모양의 자주색 꽃인 금강초롱꽃이 피로를 씻어 주었다. 중봉 정상엔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에 종처럼 생긴 자주색 꽃이 피어 꽃잎 가장자리가 5개로 갈라진 용담꽃이 벌써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화악산 정상은 하늘을 뚫었다. 화악산 촉대봉 응봉 골짜기는 애기봉 능선을 사이에 두고 짙은 안개에 갇혀 볼 수 없으니 자연의 조화는 신비스럽고도 오묘하다. 화악산 주봉(主峰), 중봉(中峰) 그리고 응봉(鷹峰)을 삼형제봉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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