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이사장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선경 칼럼> 정부는 바이오헬스 혹은 보건의료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하고 꾸준히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왔다. 그 결과 이미 해당 분야의 정부투자는 ICT 분야와 비교해서 규모와 수준이 대등한 단계에 이르렀고, 논문이나 특허와 같은 우수한 과학기술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산업적·경제적 효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바이오헬스 제품이 상용화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데 비해 절대 투자량이 부족하고, 특히 민간 투자가 저조한 것이 지적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부연구개발사업 성과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민간 연구개발투자는 ICT 분야가 1:8인데 비해 바이오헬스 분야는 1: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부 투자의 한계를 고려할 때 민간 투자의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모든 분야의 연구개발이 산업화되어 가는 과정에는 3개의 큰 진입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연구자의 아이디어가 시제품(prototype)으로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악마의 강(River of Devil)’이고, 두 번째는 시제품을 시장으로 진입시킬 수 있는 상용화 완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넘어야 하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시장에 나간 제품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기업이 돈을 벌고 산업화가 완성되는 ‘다윈의 바다(Sea of Darwin)’가 있다.

이 중에서 ‘죽음의 계곡’은 연구개발 결과물의 실용화-상용화-사업화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넘어야 하는 과정으로, 모든 산업에 존재하는 장벽이다.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죽음의 계곡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폭과 깊이가 다른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이 넓고 깊기 때문이다. 인체에 바로 사용될 결과물의 안정성 및 유효성 평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에 민간이 투자하기 어렵고 자칫 시장실패의 영역이기도 하다.

정부 투자와 민간 투자의 단절 현상은 ‘죽음의 계곡’으로 설명된다.

죽음의 계곡 그래프에서 X축은 연구개발의 사이클이고, Y축은 펀드 혹은 이익이다. 즉, 죽음의 계곡은 정부자금을 투입하는 초반 단계와 민간 자금이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오는 후반 단계 사이의 투자 공백(funding gap)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바이오헬스 분야에 경쟁력있는 원천기술이 없고, 자본과 사업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 없는 경우는 죽음의 계곡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민간역량이 절대 부족하다. 따라서 바이오헬스 연구개발에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죽음의 계곡을 선제적으로 메꾸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바로 그‘ 죽음의 계곡’을 넘겨주기 위해 만든 국책 사업이다. 정부가 철학을 가지고 세계에서 유일한 탑-다운(Top-Down)방식의 클러스터를 구축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송첨복단지는 그동안 민간투자를 얼마나 이끌어 냈을까?

재단의 1차 조성기(2012~2014년)대비, 정착기(2015년 이후)의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 실적을 비교해 보자.

기업 유치의 경우 41개 기업에서 89개 기업으로 2.2배 늘었으며, 연구개발 투자 금액은 약 777억 원에서 4962억원으로 약 6.4배(638%) 증가하였다. 첨복단지가 조성되면서 기업이 시설, 설비, 장비 등의 투자가 따라오고 있는 것으로, 직접 연구비와 인건비 및 관리비는 제외한 액수임에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 정부기관의 추가 투자는 6% 수준이었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바이오헬스산업의 죽음의 계곡을 메꿔주는 혁신 생태계 조성하여 민간 투자가 활성화 되도록 돕는 사업인 것이다. 기업의 연구개발 성과가 사업화로 연결되고 사업화를 통해 민간자본이 다시 연구개발 투자로 유입되는 산업화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되고 있다.

필자는 정부 투자의 성과평가 측정은 민간 투자를 얼마나 유도했는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투자가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포장되기보다는 국부 창출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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