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은 적립기금이 아니라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공보험 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된 뒤 해마다 흑자폭이 커지고 있다. 흑자가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출 증가 속도가 수입 증가 속도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건보료 수입과 지출은 2011년부터 증가 속도에서 차이가 생겼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건보료 연평균 수입 증가율은 11.2%다. 반면 지출 증가율은 7.7%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 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어느 정도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위생상태가 좋아졌고 만성질환자들이 건강관리를 잘하는 등 ‘건강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수는 늘고 있지만 각자가 쓰는 의료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건강보험은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단위로 재정 운영을 하는 사회보험이다. 한 해 걷은 건보료는 그해 모두 국민의 의료비로 쓰는 게 이상적이다.

홍성익 부국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새 정부는 ‘건강보험 하나로’ 큰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건보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며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선언했다. 시민사회의 오랜 숙원인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환자와 가족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새 정부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의 핵심은 '비급여의 급여화'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명백한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면 모두 비급여로 분류해서 비용 전액을 환자가 부담했지만, 앞으로는 미용, 성형과 같이 명백하게 보험 대상에서 제외할 것 이외에는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병원비 폭탄’의 근본 원인인 ‘비급여 문제’를 전면적으로 손본다고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의학적 필요성을 따지는 절차를 거쳐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화하되, 비용성이나 효과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예비 급여’ 제도를 둠으로써 모든 비급여를 건강보험에 편입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1조원에 이르는 건보 누적 재정의 절반 가량인 11조원을 투입하고, 부족했던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동시에 보험료율을 지난 10년간 평균 인상률(3.2%) 정도로 올리면 30조6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야당 등에서는 향후 5년간 31조원이 투입되는 등 막대한 재원이 소요될 수밖에 없어 향후 건강보험료 대폭 인상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만만찮다. 의료비 지출이 통제범위를 넘어설 경우 5년 뒤 ‘건보료 폭탄’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 건보재정 흑자 누적분이 20조원이 넘고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법에서 정한대로 투여된다면 예년 수준의 건보료 인상으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조원에 이르는 건보 누적재정의 절반 가량을 보장성 확대에 쓰고 건강보험 국고지원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건보료 폭탄’은 지나친 우려라는 입장이다. 또 최근에는 노인 의료비 증가율이 과거에 견줘 크게 둔화됐기 때문에 건강보험 지출 속도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국고지원의 경우 현재 건강보험법 등에서 예상 건보료 수입액의 20%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면 앞으로 한해 1조5000억원을 더 투입할 수 있어 5년 동안 거의 8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2007~2016년 10년 동안 예상 수입액의 15~17%정도만 지원해 약 14조7000억원을 덜 지원했다. 나머지는 건보료 인상과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줄이는 정책에서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건보료는 최근 10년 동안 평균 인상율인 3.2%를 넘지 않는 선에서 올릴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보 보장성 강화에 들어가는 예산에 대해 누적 흑자분을 활용하고 국고지원을 더 받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건보료는 최근 10년 동안의 인상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과도한 의료이용 등을 줄이고 조기발견 및 조기치료를 통한 의료비 절감 등 합리적인 의료이용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06년 보건복지부는 6세 미만 아동의 입원진료비 본인 부담금을 진료비의 20%에서 0%로 전액 면제했다. 6세 미만 아동이 입원하면 병원비를 건강보험이 모두 부담하게 한 것이다. ‘가계 부담을 덜어주고 미래 성장동력인 아동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유행병도 없었는데 병원에 입원하는 6세 미만 아동이 급증했다. 2006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대신 지급한 6세 미만 아동 입원비는 3838억원으로 2005년 대비 40%나 늘었다. ‘입원비가 무료인 덕분에 아프지도 않은 아이를 입원시키고 놀러 다니는 엄마들이 늘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복지부는 결국 6세 미만 아동 무상입원 제도를 시행한 지 2년 만인 2008년 아동의 입원 본인 부담금을 0%에서 10%로 올렸다. 긍정적 효과보다 도덕적 해이와 재정낭비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일 건보 비급여 항목을 전면 급여화하겠다고 선언하자 이번 대책이 병원의 ‘과잉 진료’와 환자의 ‘의료 쇼핑’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잉 진료와 의료 쇼핑은 결국 건보료 폭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종 설문조사에서 건보 재원 조달 방식으로 ‘건보료 인상’을 꼽는 국민은 극히 드물다. 국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건보 재정 누적 적립금이 21조원이나 쌓여 있기 때문에 향후 5년간은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5년 뒤 건보료가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느냐’는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의 목적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와 충분한 재정이 있다하더라도 과잉 진료와 의료 쇼핑으로 인해 나쁜 제도와 불충분한 재정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건강보험 재정 ‘흑자 21조원'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부의 세밀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필수보장 영역의 확대와 더불어, ‘건강보험 하나면 충분하다’는 의료서비스 제공자․국민 사이의 신뢰 및 합리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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