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건강’을 명분으로 담뱃값을 인상했지만 결국 세수만 늘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 박근혜정부의 담뱃세 인상으로 2014년 6조9000억 원이던 담배 세수는 2015년 10조5000억원, 2016년 12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총 세입 중 담뱃세 비중도 2014년 2.3%에서 2016년 3.6%로 커졌다. 지난 2014년 9월 16일 당시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담뱃값 인상은 세수 목적이 아닌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문형표 전(前) 보건복지부장관은 2014년 9월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필자를 비롯한 출입기자간담회를 열고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가격정책이 최선”이라며 “담배가격을 4500원정도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 전 장관은 “복지부 입장에서는 최소한 2000원 올려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국제 평균가격인 7000원까지는 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인상으로 인한 수입은 금연정책에 다시 투자하도록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금연클리닉 치료를 받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통계도 있다”고 부연했다. 2014년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4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흡연율 높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다.

홍성익 부국장

어딜 가나 담배는 ‘백해무익’의 대명사이고, ‘공공의 적 1호’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소위 선진국은 물론이고, 담배의 본고장이라는 라틴아메리카 역시 금연정책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금연정책을 실시해서 요즘은 흡연율이 10~20% 수준이라고 하며, 우리처럼 국민 10명 중 4명이 흡연자라는 칠레도 얼마 전부터 실내 공공 장소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시켰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 알고 있고, 대부분이 금연을 지지한다. 그래서 2015년에 정부에서 담뱃값을 인상(가격 금연정책)하는 한편 흡연 경고 그림을 담배 포장에 넣는 걸 의무화하겠다(비가격 금연정책)고 발표했을 때도 다수 시민들은 크게 반대를 하기보다는 일단 수용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부 흡연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주로 가격 인상폭이 너무 과하다 정도에 그쳤다. 담뱃값 인상은 WHO(세계보건기구)의 말대로 “단기적으로 금연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가격 금연정책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담배 판매량은 (가격 인상 전인) 지난 2014년 12월 4억갑에서 (가격 인상 이후) 2015년 1월 1억8000만갑으로 반 토막이 나기도 했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었지만, 3월 들어 2억5000만갑으로 다시 늘어나더니 4월에는 3억갑까지 판매가 증가했다. 비가격 금연정책이 수반되지 않은 담배 가격 인상은 흡연율을 지속적으로 낮추지는 못하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정부가 2015년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한 이후 담배 판매량은 인상 전 정부가 예상치에 비해 적게 감소했다. 판매량이 약 3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실제로는 2015년 23.4%, 2016년 15.9%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담뱃세 인상에 따른 세수 증가는 예상치를 훨씬 넘어섰다. 담배 세수는 각각 3조5276억원, 5조3856억원 늘어난 10조5181억원, 12조3761억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담뱃세가 국내 총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2.6%에서 2015년 3.6%, 2016년 4.0%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복지증가가 국민의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복지재원을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징수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없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담뱃값 인상으로 인해 세수 수입은 늘고 있지만 금연 지원에 쓰이는 예산은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 2015년 1월 국민건강증진을 명분으로 담배세수에 포함된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354원에서 841원으로 2배 넘게 인상했고, 금연지원서비스 사업 예산은 2014년 112억원에서 2015년 147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에 불과하다. 올해 금연지원 서비스 사업 예산은 1365억원(4.3%)으로 오히려 그 비중이 더 줄었다. 2016년 금연지원 서비스 예산은 1479억원으로 금액은 소폭 증가했지만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로 여전히 미미하다. 그나마 금연자 지원정책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일례로 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는 금연치료 프로그램의 성공률은 1%에도 못 미친다.

담뱃값 인상은 애초부터 ‘서민증세’ 논란을 불렀다. 박근혜 정부의 세수 결손 규모가 2013년 8조5000억 원, 2014년 10조9000억 원에 달하는 등 재정건전성에 경고등이 커졌는데, 서민들의 애호품인 담배에 세금을 크게 붙여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었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 서민증세라는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세수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 건강이 목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서민 주머니 털기’는 수치로 확인됐다. 게다가 담뱃세는 대표적인 ‘역진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014년 19세 이상 흡연 남성 265만명의 건강보험 진료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127만원 이하인 소득하위 1분위 흡연자는 월평균 소득 391만원의 흡연자보다 총 653갑의 담배를 더 피웠다. “정부가 조세저항이 적은 담뱃세나 근로소득세, 주민세 인상을 통해 저소득층의 지갑을 얇게 만들고 있다.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서 세금을 더 걷기보다는 서민의 돈으로 복지와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담뱃값 인상을 단행한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을 압박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며, 1심 재판부에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6월8일)받고 오는 7월25일 항소심(2심, 서울고등법원) 1차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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