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선경 칼럼> 우리나라의 의료비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생산 인구는 줄고 고령화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간다면 국가재정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병원이나 의사 개인의 수익은 줄고 있는 추세다. 증가된 의료비와 감소한 병원·의사의 수익 사이의 차액은 누가 가져갈까 자못 궁금해진다.

필자는 제약, 의료기기, 재료 및 유통 등 기업들이 그 편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예컨대 심장 관상동맥 스텐트를 4개 삽입한 환자가 860만원의 병원비를 지불하였다면, 그 중에 병원은 60만원을, 스텐트 회사는 800만원을 가져간다.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의사의 처방과 의료행위가 필요하다. 의사가 의료의 본질을 수행하며‘재주’를 부렸는데 정작 대부분의 부가가치는 기업에게 돌아간다. 그 대부분은 외국계 기업이다. 비단 심장 스텐트에 그친 현상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병원도 의사도 부린 재주만큼 수익을 올리는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병원은 좋은 약과 의료기기 그리고 우수한 의료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곳이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의료 정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과 융합하여 환자를 가장 안전하고 적절하게 진료하는 미래 의술의 보증서다. 이를 사장한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진료 수익만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저수가 등 현실적인 벽은 결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구나 병원에 대한 각종 규제와 의료계 내부의 치열한 투자 경쟁은 이대로라면 파산을 논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미래도 불투명하다.

저출산과 더불어 구매력이 없는 고령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지금의 의료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 분명하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이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았고, 의사의 꽃으로 꼽히는 내과까지 경영난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의료기관 수익구조를 진료 수익 일변도에서 연구개발이나 창업 등으로 다각화-다변화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5년 전에 도입한 연구중심 병원의 연구비가 5년새 31.6%가 늘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2013년 5288억원에서 지난해 6962억원의 연구비 수주를 올렸다는 통계다. 병원들이 임상연구 역량을 활용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비를 수주한 것이다. 의료기관의 인프라나 임상 데이터가 점차 수익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증거이다.

의료 인프라와 의료 데이터를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병원과 의사가 연구개발(R&D)에 참여하여야 한다.

세계 최고수준의 임상실력을 갖춘 의사들이 전문성을 활용해 의료산업에 진입하고, 창업까지 유도하는 생태계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이 독식하는 수익을 나누자는 제로섬 게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을 도와 수익을 극대화하고 산업의 판을 키워 상호 성장하는 윈-윈의 노력이기도 하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은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있다. 의료는 사회와의 계약을 통해 의무과 권한을 주고받는 것이다. 특히 현 정부의 화두는 ‘돈보다 사람’이다. 과연 의료기관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안, 적어도 지금보다 수익을 더 높이는 방안은 무엇일까. 병원과 의사들이 기업의 수익구조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부의 연구중심병원 프로젝트가 그 대안의 하나이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활용할 수도 있다, 창업을 지원하는 국가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의사가 창업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고대의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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