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
세브란스어린이병원장
대한소아내분비학회 고문

새 정부가 힘차게 닻을 올렸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에 산적한 묵은 과제들을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해왔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선거운동 기간부터 줄곧 의료의 공공성 강화에 방점을 두고 비급여 치료의 급여화를 비롯한 아젠다들을 통해 역대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전하고 있다. 의료인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사뭇 기대가 크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긍정적 변화는 역시 건강보험제도에서 비롯돼야 한다. 대한민국에 전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도래한지 벌써 28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들은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소아당뇨 적정 관리 정책 시급

전국민건강보험 시대의 혜택을 적절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 중에는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도 포함된다. 제1형 당뇨병 환자에 대한 얘기다. 1형 당뇨병은 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게 닥칠 수 있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질병의 특성 때문에 혈당의 등락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당뇨병, 정확히는 2형 당뇨병 환자들 보다 훨씬 크고, 혈당을 적절히 조절하고 유지하기도 어렵다. 식사·운동·업무 등 일상에서의 거의 모든 활동들이 혈당 변화와 직결돼 매순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하루에 적어도 4회 이상 혈당 측정이 필요하다.

2016푸른삶캠프 혈당관리

합병증에 대한 우려는 차치하고 당장 언제 올지 모를 저혈당에 대한 두려움이 상존한다. 취침 중에도 갑작스레 저혈당이 발생하기도 해 환자 본인과 가족의 걱정에 밤낮이 있을 수 없다. 인슐린 투여 말고는 의학적인 치료방법도 마땅치 않다. 어린 환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하루 네 번 이상 인슐린 주사를 맞거나 인슐린 펌프를 달고 사는 불편을 견디고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소아내분비 전문의로서, 이 아이들을 위한 보다 전향적인 정책 마련을 촉구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인슐린 치료를 평생 받아야 하는 1형 당뇨병 환자 가족이 겪는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하다. 증상이 심한 환자들의 경우 자가 인슐린 주사로도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현재 우리 건강보험제도는 인슐린과 일부 소모성 재료에 대해서만 비용 보전을 해 주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임상적 효과, 편리성 그리고 비용 효과성을 겸비한 인슐린 펌프와 연속혈당 측정 등 치료법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법에 대한 비용 부담은 온전히 환자들의 몫이다. 급여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환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치료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

1형 당뇨병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다. 혈당 조절만 적절히 이뤄진다면 이 아이들은 정상인과 조금도 다름없이 성장할 수 있지만, 세상의 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린 환자들이 아직도 친구들의 멸시와 놀림을 피해 화장실 같은 비위생적인 장소에서 홀로 인슐린 주사를 사용하고 있다. 실로 참담한 일이다. 아이들이 당당하게 열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는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치료과정에 대한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생명과도 같은 혈당 관리를 위해 언제 인슐린 주사를 꺼내 들어도 이상하지 않도록,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다른 중증질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차제에 질병에 대한 정보는 물론, 질병을 앓는 급우나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바른 자세를 형성하는 교육과정을 학교 정규 과목으로 도입하면 어떨까 한다.

질병 이해·치료과정 공감 중요

2016 푸른삶 캠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포즈를 취했다.

안정적인 혈당관리와 함께 저혈당 등 응급상황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스템 또한 보완돼야 한다. 영유아보육법, 학교보건법 등의 개정 노력 등을 통해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 안에서 혈당을 관리할 수 있는 작은 기반들이 하나 둘 마련되고는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학교 내에 인슐린 주사를 맞을 수 있는 양호실이나 별도 공간이 구비돼야 한다. 또한 보건교사나 어린이집 교사가 인슐린 주사나 저혈당 발생 등 응급상황에 쓰는 글루카곤 주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실제 시행되도록 여건을 만드는 세심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의료진의 환자교육 활동에 대한 가치도 인정받아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관리는 일생 동안 계속되며, 그 과정 역시 쉽지 않다. 의료인들의 환자 및 가족 대상의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수가 인정 등 보상 기전이 전무한 상황에서, 의료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들을 환자들에게 전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행위나 서비스도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동반돼야 한다.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지속적이고 충분한 교육은 환자의 건강과 예후 개선에 필수 불가결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교육 수가에 대한 인정이다.

환자 교육활동 수가 인정돼야

또한 의료인들은 당뇨병 환자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당뇨캠프나 당뇨교육 세미나의 운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최근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외부 후원이 어려워짐에 따라 이러한 프로그램의 운영이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다. 공공성이 있는 사업은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한 실정이다.

새 정부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공공성이 담보된 보건의료제도 안에서, 적어도 환자의 자기 관리 노력과 의지와는 무관한 질병 때문에 경제적 타격이나 치료 환경 미비로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모든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우리 보건의료의 수많은 난제들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정책입안자 및 관계 공무원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부디 이번 정부에서는 1형 당뇨병 환자를 비롯해 보다 많은 환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적인 성과를 내시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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