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데이터 활용 맞춤치료 시대 개막
‘고비용-저효율’ 의료체계 문제점 인식 정밀의료 대두
부정확한 치료 따른 부작용 줄이고 의료비 절감 기대

38세 여성 A씨는 가족력상 어머니가 난소암이었고, BRCA1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A씨는 22살부터 꾸준히 자가 검진 및 유방 검사를 해오던 중 최근 검사에서 발견된 유방 종괴를 수술로 제거하고, 1기 유방암으로 진단받았다.

이강현 국립암센터원장

면역조직화학 검사에서 호르몬 수용체는 양성, HER2 수용체는 음성이었다. 재발 가능성 및 항암제 치료 효과를 예측해 주는 유전자 검사에서는 재발 가능성은 매우 낮고, 항암치료 효과는 작은 군으로 분류되었다.

이에 따라항암제 치료는 하지 않고, 항호르몬제복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A씨는 BRCA1 유전자 변이가 있어 난소암 발생 확률이 10년간 37%로 예측되어, 양측 난소 절제에 대한 상담을 받고 관리를 하게 되었으며, 이후 적절한 식사량과 운동에 대해 처방을 받았고, 스마트폰과 스마트 워치를 통해 실시간 관리및 코칭을 받고 있다.

위 사례는 먼 미래가 아닌 현 시점에서 구현 가능한 정밀의료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유전자적 특징과 생활환경, 가족력을 모두 고려한정밀의료 서비스는 이미 우리 의료 시스템의 일부로 들어와 있다.

◇정밀의료의 도입 배경= 지금까지의 암 치료는 특정 암의 병기에 따른 표준화된 치료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런 표준화된 치료 역시 오랜 기간의 많은 경험과 임상시험을 통해 체계화된 것이며, 광범위한 문헌 고찰을 통해 표준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치료법이 같은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고, 일부 환자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또는 치료 효과가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

표준치료 역시, 특정 조건으로 구성된 샘플 집단에서 얻어진 반응률에서 도출된 것이므로, 이런 표준적인 치료가 개별적으로 어떤 환자에게 이득이 있고어떤 환자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지를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이런 치료의 예측 불가에 따른 결과들은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회경제적 비용의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개발된 항암제들의 작용원리는 정상세포와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빨리 분열하는 세포, 주로 암세포를 대상으로 세포 분열에 필요한 유전자의 복제, 전사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기본 원리 때문에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에까지 영향을 미쳐, 대부분 부작용이 동반되어 나타나고 또 이런 치료 기전을 우회하는 방법을 가진 암세포에 있어서는 효과를 보이지 않기도 했다.

최근 많이 출시되는 표적치료제의 경우는 정상세포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암세포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 즉 DNA변이, 특이 단백질이나 다당류의 발현, 비정상적인 대사 과정 등을 공격 대상으로 발굴하고, 이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물질로부터 개발된 것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정상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암세포의 사멸, 증식 및 전이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있다.

하지만 개개의 암세포들은 균질한 특성을 가지지 않고 그 자체도 계속 약제의 효력을 무력화 시키는 방향을 찾아 변이를 하고 있어서, 이런 많은 비용과 노력을 통해 개발한 표적치료제가 기대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두된 것이 바로 정밀의료이다. 암세포의 유전자변이, 단백질 발현, 대사물질, 미세 환경 수준을 모두 파악하고 분석한 데이터뿐
아니라, 개개인의 유전적 특징, 직업, 생활환경, 식생활 습관의 특징까지 모두 아우르는 방대한 규모의 정보를 종합분석해, 그 개인에게 적합한 최적의 치료, 즉 최소의 부작용과 최대의 효과가 기대되는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정밀의 료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기존의 맞춤 의료의 개념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구상으로, 부정확한 치료법에 의해 발생하는 부작용과 낭비를 최소화해,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암 분야의 정밀의료= 암에서의 정밀의료는 한마디로 암세포의 유전변이에 기반한 암 진단과 치료라고 할 수 있다. 암은 유전변이의 축적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정밀의료가 환자에게 실질적인혜택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 동안 사용해 온 세포독성 항암제기반 화학요법과 달리, 암의 돌연변이를 찾아내어 이 돌연변이가 만들어내는비정상 단백질을 무력화하는 표적치료제를 투여한다면, 부작용은 획기적으로줄이면서 암의 진행을 막고 환자의 생명을 늘릴 수 있다.

또 같은 암종에서도 발생하는 유전변이와 이에 따른 치료 반응 및 예후가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유전변이의 유무에 따라 항암제를 다르게 선택하는맞춤형 치료 전략을 사용한다면, 효과
는 없고 부작용만 유발하는 불필요한치료를 피할 수 있다.

◇암 정밀의료 실현을 위한 과제= 암유전자에 흔한 유전변이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과 새로운 표적 치료제의 등장으로 암의 진단과 치료는 이제 새로운 발전 단계에 진입하였다.

질병치료 예방중심으로 패러다임 바뀔 것

정밀의료에 기반한 암의 진단과 치료는 우리나라의 생명공학과 종양학 연구를 한 단계 도약시킬 것이며, 무엇보다도 암 환자의 치료 성적과 생존율 그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다. 우리나라 암 환자들이 정밀의료에 기반한 암의 진단과 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과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첫째, 암의 유전변이 진단을 널리 시행하여 치료 가능한 유전변이를 가능한 많이 찾아내는 것이다. 인간 유전체(게놈)는 약 30억 쌍의 DNA 염기 서열로이루어져 있어 유전체에 존재하는 전체유전변이를 찾아내기가 무척 어려웠으나, 인간 유전체 염기 서열이 알려지고차세대 염기서열 검사법이 발달함에 따라, 유전체의 염기 서열을 쉽게 판독할수 있고, 암 세포에 존재하는 모든 유전변이를 적은 비용으로 찾아낼 수 있게되었다.

따라서 적절한 검체 처리 과정을 거친 다음 일정한 인증을 받은 검사실에 검체를 보내, 적은 비용에 높은 신뢰도로 유전변이를 검출할 수 있다. 이러한 유전변이 검사 과정은 개별 연구에서만 진행되어 왔으나, 정밀의료 시대의 도래에 따라 암의 진단 과정의 하나로 널리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둘째, 이렇게 찾아낸 암의 유전변이는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여 연구자들과 의료진들이 새로운 치료법 연구와 약물 개발에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되어야 한다. 개별 암의 유전변이와 종양 생물학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들이 다른 연구자들과 환자에게 공유되지 못하고, 실험실의 공책이나 서랍 속에 묻히면서, 새로운 연구나 약물 개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찾게 되는 주요 진행성 암의 유전변이는 국가가 관리하는 암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고 분석하여, 그 결과를 국내의 연구자들과 의약계에 제공하여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환자의 임상 및 유전체 정보를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암의 표적 치료제를 이용한 임상시험을 확대하여 더 많은 환자들이 정밀의료 기반의 표적 치료제를 투여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암 환자의 약 5%
만이 새로운 암 치료제의 임상시험에 등록되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어느 곳에서 어떤 약물을 이용한 임상시험을 시행하고 있는지 몰라서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환자가 치료 가능한 유전 변이를 가진 암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면, 해당 치료제를 이용한임상시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바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은 국내 주요 병·의원을 아우르는 다기관 임상시험시스템을 조직하여, 임상시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정밀의료 기반의 암 표적 치료제 임상시험에 포함되는 유전변이 검사 및 표적 치료제 획득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은 개별 병원이나 연구소가 모두 부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많은 병원과 연구소, 검사실이 함께 참여하는 다기관 임상시험을 수행한다면, 검사 비용과 약물 도입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암의 정밀의료를 단기간에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정밀의료 기반 암 진단 및 치료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 및 확립이다. 종양생물학에 기반한 표적 치료제의 임상시험 개시 및 승인 절차를 합리화하고, 이미 다른 나라에서 승인
된 표적 치료제의 도입 절차를 간소화한다면, 정밀의료의 혜택을 환자들에게 더욱 빨리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방·관리 중심으로 의료 패러다임의 개편= 정밀의료는 장기적으로 치료 중심에서 예방·관리로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정밀의료 시대의 암 예방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연 등 개
인의 생활습관 변화에 의한 암 예방이나, 대장 용종과 같은 전암 병변의 제거 혹은 전립선암 종양표지자와 같은 바이오 마커를 확인하는 검진을 넘어서 미국의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예처럼, 대상자 특성을 유전자 및 분자 수준에서 검진하여 암 위험도를 평가하고, 사전적이고 적극적인 중재를 통한 암 예방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점차 증가하는 암 생존자에 있어서도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이차암 예방 전략을제시해 줄 수 있다.

◇소아청소년암에서의 정밀의료= 정밀의료의 고도화에 따라 기대되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소아청소년암이다. 소아청소년기는 급성장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로, 이 시기에 받는 항암치료는 환자의 성장과 발달에 크고 다양한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완치 이후 안고 살아야 하는 장기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부작용은 줄이면서 동시에 치료 효과는 높이는 정밀의료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국립암연구소는 ‘소아암 MATCH’와 같은 임상시험 프로젝트를 가동해 정밀의료 기반의 소아청소년암 유전자 연구와치료법 연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밀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적차원의 노력= 우리나라의 정밀의료 상황은 이미 정밀의료 연구개발과 제도 정비에 힘써온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과 비교하면 다방면에서 격차가 있는 것은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임상의료 수준 및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을 감안하고, 국가전략 프로젝트 등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정밀의료 암치료시스템의 구축과 신약 개발이 활성화된다면, 이러한 격차는 가까운 시일 내에 극복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1984년 처음으로 한국인의 사망률 1위를 차지한 암은 그 이후로 한 번도 그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암을 정복하기 위한 의료계의 노력도 부단하게 이어져 정밀의료라는 새로운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밀의료는 역행할 수 없는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이자 큰 흐름이다. 정밀의료가 실현되면 암은 곧 죽음이 아니라 만성병의 하나로 암을 관리하면서 살아가는 환자가 더욱 많아질 것이며, 사전에 암 발생을 예측하고 예방적 조치를 받아, 건강한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우리 모두 철저한 준비로 미래의학 시대를 준비해야하며, 미래의학은 암의 정복과 생명 연장이라는 인류의 오랜 염원을 이루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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