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열두조충(Diphyllobothrium nihonkaiense, 東海裂頭條蟲)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기생충일까? 오래 전 학생 때 기생충학 강의를 들으셨던 의사 선생님들에겐 무척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절열두조충(Diphyllobothriumlatum) 또는 순수 우리말로 ‘긴촌충’이라고 불렀던 기생충이다.

그러나 최근 분자유전학적 기법이 발전하면서 유럽에 분포하는 종과 우리나라, 일본 등 극동 지역에 분포하는 종이 유전학적으로 엄연히 다른 종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기생충학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이름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원래의 이름(학명)에는 ‘nihonkai(일본해라는 뜻)’에 라틴어 어미인 ‘-ense(장소를 뜻하는 접미사)’가 붙어 ‘nihonkaiense’로 되어 있지만 우리말 이름을 붙일 때는 ‘일본해’ 보다는 ‘동해’라고 붙이는 것이 타당하다고들 하여 ‘동해열두조충’이 된 것이다. 우리말 이름은 우리나라 학자들의 자유 의지에 따라 결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해열두조충 성충(1마리)의 모습.

Diphyllobothrium nihonkaiense는 1981년 일본에서 Yamane, Y. 박사 팀에 의해 처음 제창되었다. 유럽의 광절열두조충이 1758년에 발견되어 이름이 붙은 후 170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광절열두조충이 민물 수계에서 발육, 전파되는 종임에 비해 D.nihonkaiense는 바닷물 속에서 발육하여 전파되는 해양 종의 하나로 판단되며 충체의 형태도 조금 다르다고하여 신종으로 제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종 제창 후 많은 학자들이 이를 의미 있는 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일본 학자들 중에도 이를 새로운 종으로 인정하기에 매우 인색한 태도를 보인 경우가 많았다. 한국 학자들은 아예 이 새로운 종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더욱이 충체 학명에‘일본해’를 담고 있어 거부감마저 있었다. 그렇지만 과학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려나 보다. 일본과 유럽 학자들이 1992년부터 2007년까지 두 가지 열두조충의 유전학적 차이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여 결국 뚜렷한 차이가 확인되었고, 의미 있는 별종임을 밝히게 된 것이다.

우리도 계속 D. nihonkaiense를 무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필자를 비롯한 국내 학자들(서울의대, 충북의대, 고려의대, 한림의대, 을지의대 팀)이 모여 우리나라 환자 62명에서 검출되었던 충체 62마리의 유전자를 면밀히 분석하였고, 그 결과 우리 충체 모두(100%)가 D. nihonkaiense임을 밝힌 것이다.

나아가 2015년 필자 연구진(서울의대)은 환자 32명에서 검출된 충체 32마리의 자궁 내 충란을 분리하여 그 충란의 크기가 유럽의 종과 차이를 보이는지 관찰한 바 충란의 크기는 종 감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리 하여 이 새로운 종을 과학적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우리말 이름만은 동해열두조충이라 부르자고 하여 합의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이 기생충(동해열두조충) 감염자가 발견된 것은 1919년의 일이었다. 경상남도 진주 부근에 거주하는 민간인(한국인) 1000명에 대한 대변검사 결과 2명(0.2%)에서 이 충란(열두조충란으로 기록됨)이 검출되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현대의학적인 기록이었다. 다만, 이때 성충까지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의보감에 촌백충(寸白蟲)이라 하여 종이 명확하지 않은 충체 감염에 대해 기록된 일이 있었다(잘못된 용어로서 단순히 ‘작고 하얀 충체’란 뜻으로 붙인 이름).

길이 수 미터-10미터에 달하는 조충류 성충의 일부분인 마디(편절, 촌백충, 촌충) 몇 개가 대변에 떨어져 나온 것을 보고 마디 하나하나가 완전한 충체인 것으로 오인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더구나 그 충체가 유구조충(돼지고기가 옮김), 무구조충(쇠고기) 또는 아시아조충(돼지고기)이었는지, 아니면 동해열두조충(연어, 송어 등 생선류)이었는지는 전혀 구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사람에서 발견된 촌백충 중에는 지금의 동해열두조충도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해열두조충의 성충이 인체로부터 처음 확인된 것은 1968년의 일이었다(조승열 교수 등, 1971년). 충체 이름은 광절열두조충(Diphyllobothrium latum)으로 기록하였는데, 50세 된 건강해 보이는 남자에서 검출하였고, 충체 길이는 약 2m 였으며, 서울에 거주하면서 여러가지 생선회를 즐겨 먹었다고 하였다.

그 후 여러 학자들이 성충 확인을 통해 감염자를 진단하였고 지금까지 총 80명 정도의 증례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환자들이 가장 흔히 먹었다고 하는 어류는 연어, 숭어, 농어, 송어 등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에서 몇 m에 달하는 충체가 검출되어 메스컴에 널리 소개된 일도 있었다.

동해열두조충은 충체가 매우 큰데 비해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에게 거의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유럽의 광절열두조충이 비타민 B12 결핍성빈혈을 일으킬 수 있음에 비해 동해열두조충 감염자에게는 이런 빈혈도 거의 보고된 일이 없다.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키는 일은 드물게 있지만 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이어트와 체중감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만일 동해열두조충에 감염될 기회가 있다면 치료하지 않고 몇 개월이라도 끼고 있어볼까 생각하고 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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