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노인의료비 ‘쓰나미(급증현상)’라는 장수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70세 초반까지는 괜찮았지만 80세를 전후해 치매․뇌졸중에 발목이 잡혀 드러눕는 고령자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5년 654만1000명에서 2025년에는 1050만8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년 후면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미 2015년 90세 이상이 15만 명, 100세 이상이 3000명을 넘어서면서 ‘의료파산’의 폭탄이 본격적으로 터지고 있다.

홍성익 부국장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75세 이상 후기 고령층에 진입하는 2030년엔 노인의료비가 연 9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령사회를 대비한 노인의료비 효율적 관리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의료비 총액은 2015년 22조2000억원에서 2024년 35조6000억원, 2030년 91조3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65세 이상 1인당 의료비도 2015년 357만원에서 2020년 459만원으로 1.3배 증가한 뒤 2030년에는 760만원으로 2015년의 2.1배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75세 이상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노인의료비는 2015년 11조4000억원에서 2030년 58조7000억원으로 5.2배 규모로 불어나고, 1인당 의료비는 같은 기간 459만원에서 882만원으로 2.7배가 된다. 해당 전망치는 물가, 노인가입자 수, 건강보험수가, 1인 진료량 상승 예상치를 토대로 계산된 것이다. 신약이 개발되고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늘수록 진료비는 증가한다.

고혈압, 관절염, 당뇨, 정신질환, 치주질환 등 5대 만성질환 노인 의료비는 2005년 1조5287억원에서 2015년 6조2348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한해 총 진료비가 1000만원 이상인 ‘고액 환자’ 가운데 65세 이상은 2015년 9만7951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10배가 넘는다. 전체 고액 환자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현재 71%다. 높은 의료비를 수반하는 생애 말기 연령대 인구가 많아지면 국가 전체의 의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료체계를 병원 중심에서 방문간호사나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가정에서 자기관리를 하는 지역사회 중심 체계로 전환할 것을 대책으로 제시한다. 노인의 불필요한 입원을 줄여 병원비를 아끼자는 얘기다.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일로다. ‘2016~2025년 8대 사회보험 중기 재정 추계’를 보면 건강보험은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선다. 21조원인 적립금도 2023년이면 고갈된다. 지난해 예측보다 2년 빨라진 것으로 재정 악화에 가속도가 붙었음을 보여준다. 2025년엔 지출 111조6000억원에 적자는 20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건강보험 지출액 중 노인의료비의 지출액 비중이 작년 38.6%에서 2025년 49.3%로 치솟기 때문이다. 장기요양보험도 3년 후에 적립금이 고갈된다고 하니 앞으로 국민건강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2060년이 되면 노인진료비가 39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노인의료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8년 후인 2025년 이후부터 국가의 재정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은 물론 고령화 시대에 현재 같은 병원 중심 의료체계를 고수할 경우 노인의료비 관리는 불가능해져 의료난민이나 돌봄 난민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덴마크 등 서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전환하는 것은 고령사회에 부담 가능한 비용에서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다. 일본도 지난 2012년 지역포괄 케어 시스템을 도입해 의료체계를 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건강보험의 재정손실을 하루라도 빨리 줄이기 위해서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 실시도 시급하다. 개편안의 핵심은 재산보다 소득에 초점을 두고, 저소득층이 덜 내고 고소득층이 더 내는 방향이다.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이자소득이 있어도 부과대상에서 누락되는 ‘불공정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사회복지제도가 확산되면서 4대 중증질환과 건강보험 적용 항목이 증가하는 것도 의료비 급증의 요인이 되고 있다. 복지 확대는 당연한 일이지만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국 국민 부담이 너무 커지고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17년 만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내놓은 것도 일정 부분 이런 긴급함에 기인하고 있다. 매년 수 조원의 적자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에서도 적립금이 고갈되기 전에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으로 운용수익률을 제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금과 보험 수입 지출의 중대한 변화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인구구조가 본격화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위기의 건강보험을 구제하기 위한 효율적인 대책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김근태 전(前) 보건복지부장관(이하 'K 전 장관')은 취임 1주년을 맞은 2005년 7월 필자를 비롯한 출입기자와의 간담회에서 “저출산․고령화는 우리사회의 뿌리를 흔드는 문제”라며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겠다”고 하면서 “앞을 보니 사납고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보였다”며 “바다를 건너려면 튼튼한 배가 있어야 한다. 제도를 고치고 사회 합의를 이끌어내 사나운 파도와 싸울 것”이라고 역설하던 12년 전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2004년 7월 1일 보건복지부 제43대 수장에 취임한 K 전 장관은 일찌감치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시행 등 저출산․고령화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추진체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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