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냥’이라는 단어는 친근하면서도 오늘 우리 현실을 비춰주는 개념어로 손색이 없다. 우리 사전에서는 ‘깜냥’을 ‘일을 가늠해 보아 해낼 만한 능력’으로 풀이한다. 과업과 능력이 서로 응하거나 어울리는지 평가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업과 능력의 상응 관계를 ‘~답다’라고 표현하는데 과업과 능력이 서로 응하거나 어울리는지 평가하는 의미는 곧 도덕적 문제로도 연결된다. 사람이 어떤 과업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고 그 일에 임할 때 도덕적일 수 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다면 도덕적 비판을 받는다. 장관은 장관다워야 하며, 선생은 선생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기업가는 기업가다워야 하고, 공무원은 공무원다워야 하며, 통치자는 통치자다워야 한다.

홍성익 부국장

사회 정치적으로 능력 또는 무능력의 문제는 항상 ‘깜냥의 문제’이다. 우리 각자는 신이 아닌 이상 일정 분야에서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깜냥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서는 것은 민폐이고, 도덕적인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럴 때는 무능력도 죄가 된다. 정치인 출신이라도 ‘깜냥’이 된다면 행정부처의 수장(首長)을 맡는 것을 사시(斜視)로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미국 일본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 ‘정치인 장관’이 일반화돼 있다. 보건복지부 내부에서도 관료나 의사 출신 등에 비해 ‘깜냥(자질)만 된다면’ 정치인 출신이 낫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고시 출신 챙기기’에 얽매이거나 좁은 전문성에 함몰되기보다는 좀 더 국민의 입장에서 정보를 판단하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대책, 국민연금․공공의료 강화, 노인의료비 부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산적한 중대 현안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단체들을 감안할 때 조정능력이 있는 정치인 출신에게 강점이 있다. 하지만 정치경력을 쌓는 단계로 장관자리를 이용하거나 인기를 노린 ‘보여주기’에 치중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와 함께 장관이 될 사람이라면 복잡다기한 보건복지 업무를 다룰 자질은 기본이다.

실제로 문민정부(김영삼정부) 때부터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재임 보건복지부장관 24명 중 주양자․김모임․김화중 전 장관․정진엽 장관 등 단 4명만이 보건․의료 분야 출신이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이들 장관 중 정진엽 장관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장관이 되기 전 정치에 입문한 상태라 정치인으로 분류한다면, 24명 중 임명 당시 전․현직 국회의원 신분인 장관은 14명이다. 대부분 실세형이거나 대권 후보군으로 분류됐던 인사들이다. 서상목․손학규(문민정부), 김원길(국민정부), 김근태․유시민(참여정부), 전재희․진수희(이명박정부), 진영(박근혜정부) 등이 장관과 의원직을 겸직했다. 1990년대 이후 복지 의제가 국가 주요 정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보건복지부는 주요 정치인들이 선망하는 부처가 됐다.

공적 권력이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자신의 ‘깜냥’을 헤아리지 못해 잘못할 경우 커다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깜냥’을 헤아리지 않고 맡은 과업을 잘 해낼 수 없을 때, 권력을 남용하고 과업을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상실된 권력의 남용은 부정을 저지르고 부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의 정치적 역량과 윤리적 덕성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하 ‘M’ 전 장관)은 부패한 권력의 단면을 보여줬다. ‘M’ 전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등 연금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의 길을 주로 걸어오다 2013년 12월 복지부장관으로 중용이 됐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그의 기본적인 가치관, 나아가 운명을 시험했다. 최순실 씨와 삼성 간 뇌물성 거래 의혹에 연루,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민연금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M’ 전 장관은 의혹 전반을 부인하다가 특검 수사 이후 첫 긴급체포, 구속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함께 근무했던 복지부의 주요 간부와 합병 찬성을 종용받았던 국민연금 측 관계자들의 일관된 진술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다 겪은 수모였다. 전임자인 진영 전 복지부장관(이하 ‘J’ 전 장관)은 2013년 3월 장관에 임명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 후 노인 기초연금 공약을 후퇴시키자 “복지부장관으로서 이걸 어떻게 국민들한테 설득하라는 말이냐“며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친박계와 갈등을 빚어왔고 결국 같은 해 9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당시 경질되는 과정에서 굉장히 말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는데 ‘J’ 전 장관의 뒤를 이은 ‘M’ 전 장관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깜냥’을 헤아리지 않고 맡은 과업을 잘 해낼 수 없을 때, 권력을 남용하고 과업을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모든 국민의 기초생활보장과 건강권을 책임지고 서민과 소외계층에게 질 높은 복지를 제공해야 하는 정부 주무부서의 기관장이다. 시대적 요구인 ‘보편적 복지 확대’와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선 복지부 이외의 부처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복지부장관의 보편적 복지에 대한 소신과 역할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통령에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을 선택한 업보로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5월 9일 이후 들어설 새 정부에 자질과 미래에 대한 비전도 부족하면서 단지 자리에 대한 욕심 탓에 ‘보건복지부장관’ 보임을 요구한다면 국민 모두가 불행할 수 있다. 혹여 장관 자리를 만지작거리는 인사들은 ‘깜냥’이 되는지 자문(自問)하고 결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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