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흔들거리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조직 새판 짜기의 대표적인 타깃기관으로 식약처가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5월9일 실시되는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식품 업무 일원화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 육성인 ‘식품 진흥’과 규제인 ‘식품 안전’의 기능을 일원화 시키자는 것이다. 현 정부는 지난 2013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을 국무총리실 직속의 독립기관인 처로 격상 시키면서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갖고 있던 식품 안전 업무의 상당 부분을 식약처에 이관시켰다. 통합 보다는 이원화를 선택한 현 정부는 식품산업 진흥 업무는 농식품부에, 식품안전관리 규제 업무는 식약처에 맡겼다. 총리실 소속 독립기관으로 격상된 식약처는 위상과 권한이 그만큼 더 막강해졌다. 법률개정 권한은 물론 의약품과 화장품, 식품의 수입 허가와 안전 관리까지 감독한다.

홍성익

하지만 농축산업계를 중심으로 식품 업무를 농식품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현실과 다른 규제를 식품산업의 성장의 한계로 지목하고 있다. 또한 현 정부의 식품행정 체계상 식품안전사고가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농장에서 식탁까지 일관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축산업계는 축산식품이 일반식품과 달리 방역과 위생의 통합관리가 필요한데 현행 축산관련 위생업무가 농식품부와 식약처로 이원화되어 있어 농장에서 식탁까지 완전하게 일원화해 체계적인 식품위생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중소식품업계도 식품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부처별로 흩어져있는 식품관련 정책을 한 곳에 모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인 ‘한국식품연구원'도 농식품부로 이관해야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중소식품업계는 지난 3월1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김재수 농식품부장관 초청 정책간담회'를 열고 국내 식품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식품정책의 효율적·체계적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가칭 ‘식품산업진흥원’ 설립을 건의했다. 농식품부·해양수산부,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식약처 등으로 흩어져 있는 국내 식품관련 정책을 하나로 묶어 ‘식품산업진흥원’이 체계적으로 정책수립과 집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농식품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여두 중기중앙회 부회장은 “관계부처별 업무가 분산돼 신속하고 체계적인 식품산업 정책 수립과 집행이 어려워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식품산업 진흥 관련 업무를 농식품부로 일원화하는 안건은 대선 후보자들에게 전달해 차기 정부 조직 구상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식품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농식품부의 입장과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식약처의 논리가 맞선 가운데 현 정부 출발 후 4년간 제자리걸음이다. 식품산업이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이다. 이웃 나라 일본이 12%, 미국이 18%에 달하는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식품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일원화한다면 식품산업 규모를 더 키워 경제적 유발 효과를 증대할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산업진흥 부처에서 규제까지 담당하면 느슨한 규제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맞는 얘기다. 국민 건강을 위한 안전 관리에 치중하는 식약처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식품업계가 이미 안전 관리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사고라도 한 번 터지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해 생산단계부터 안전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런데도 진흥과 규제 부처가 분리된 탓에 업계는 양쪽을 상대해야 해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중국 송나라 때 원오극근 선사가 수행자를 위해 만든 100칙 가운데 하나인 ‘벽암록’이라는 지침서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나온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선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안’과 ‘밖’에서 함께해야 일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줄탁동시’처럼 산업 육성 입장인 ‘식품 진흥’과 규제 성격인 ‘식품 안전’ 기능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일원화하자는 것인데, 선진국에서는 식품 진흥과 안전 관리를 일원화해 농업·식품 부처로 통합하고 의약품은 분리하는 추세다. 실제, 캐나다는 식품안전관리를 농업농식품부의 식품검사청이, 덴마크는 식품농수산부의 수의식품청이, 독일은 소비자식품농업부의 소비자보호식품안전청이, 스웨덴은 소비자보호농업식품부의 식품청이 맡는다. 의약품은 분리해 관리한다. 차기 대선이 한 달 앞으로 가까워지면서 다시 식품 진흥과 안전 관리 업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를 분리해 보건 파트를 독립시켜 질병관리본부·식약처 등을 합친 ‘보건청’을 설립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식약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모델로 삼았지만, 식품 강국인 유럽은 미국과 다른 체제인 것에 주목하자. 융복합시대에 걸맞게 식품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통합하고 의약품은 보건으로 묶는 프레임으로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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