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 선진화 방안

황치엽 한국의약품유통협회장

오는 7월부터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가 시행되어, 의약품유통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예고된다.

그런데 그 변화가 유통업계는 달갑지만은 않은 제도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시장질서가 투명화 되고 건전화 된다는 점에서 필요한 제도이기 하지만, 문제는 전제조건이 완비되지 않아 무리수가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유통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을 요구하고 있고, 더 큰 문제는 유통업계가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부분(기업의 경제적 손실 우려)이 존재한다.

2006년 당시 지식경제부에 의해 추진이 시작된 이 제도 목적은 ‘유통 투명화와 안전한 의약품 투약을 위한 위해 의약품(가짜약) 척결’이다. 당시 지식경제부는 이 제도를 위해 RFID라는 획기적인 제품정보 코드 부착을 추진했다. 시범사업에 정부 지원을 받아 일부 제약사가 참여하였으나, 다른 업체들은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다.

3년여 전 시행이 임박해 지자, 업계의 관심이 증가했으며, 제약업계부터 유예기간을 거쳐 의무화가 진행되었다. 제약계는 의무화된 현재 2D나 RFID 등 어떤 방식으로든 제조번호. 유통기한이 포함된 일련번호를 기재해 출하하고 있다.

우리 의약품유통업계도 뒤를 이어 금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유예기간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유예가 아닌, 계도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유통업계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데 있다. 기본적으로 전제 조건들이, 유통업계가 수용하기 힘든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가 실시간으로 제조번호. 유효기간을 보고하기 위해서는 제약사에서 유통업체로 배송된 의약품의 바코드가 완벽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실시간 보고라는 측면에서 만약 코드오류가 발생하면, 유통업체는 출하 라인을 멈추고 수기(手記)로 입력하거나,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공장으로 치면 생산라인이 멈추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개의 의약품이 출하되는 유통업체들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비수익성 투자를 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업체들은 추가 인력투입이 불가피하며, 인력증원은 고정비 증가로 이어진다.

유통협회는 이러한 회원사들의 여론을 수렴해, 지난 55차 정기총회에서 유통업계가 요구하는 핵심 조건이 수용되지 않으면 ‘수용불가’ 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유통업계가 요구하는 조건은 △어그리게이션(묶음단위)의 의무화 △바코드 시스템의 표준화 △시설투자비의 지원 등이다. 여기에 △실시간 보고의 월별보고로 완화도 필요하다.

유통업계는 동 제도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2년여 전부터, 이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근 정부가 뒤늦게 유통업계 요구를 규제완화 차원에서, 수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유통업계의 요구사항들은 유통업계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시설투자비 지원과 월별보고로의 완화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약계가 협조 안하면 해결될 수 없는 부분들이다.

유통업계는 2D와 RFID로 이원화된 바코드 기록을 위해, 모든 바코드를 읽는 리딩기를 구매해야 하지만, 부착 바코드가 완벽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 부분은 제약사들이 협조해 주어야만 가능한 부분이다. 즉, 부착 바코드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일련번호 제도가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시간이 많이 지체되며, 결국 유통업계의 경쟁력 상실과 연결된다. 만약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면 그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결국 유통업체의 몫이 된다는 얘기다.

바코드 일원화와 어그리게이션 의무화를 유통업계가 최후의 배수진으로 치고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정부도 동원 가능한 방법은 모두 동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업계의 일방적 희생만 강요하는 현재의 제도 추진은 재고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실제 시뮬레이션을 해 본 업체들은 실시간 보고에도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안그래도 늘어나는 지체시간을 더욱 늘리는 요인으로서, 업계로선 설상가상의 요소이다. 이는 전제조건 요구 충족과 별개의 문제로, 지금 현재 시행 중 인 월별 보고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7월 시행제도도 실시간 보고가 아닌 월별보고로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로선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 시스템을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업계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산업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정부는 그러한 우려가 팽배한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 좀 더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는 움직임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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