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라는 보건의료정책

전우택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북한의 핵개발 및 인류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 많은 행동들은 우리로 하여금 통일이 점차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북한이 경직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것은 그만큼 북한이 국가로서 존재할 가능성이 더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안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아니든, 통일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통일 준비는 우리 사회 각 영역에서 정확히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면서도 긴급성과 지속성 양쪽을 다 요구하는 보건의료 영역이야 말로 가장 통합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준비가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통일준비에 있어 우리가 고려하여야 할 사항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들을 준비하여야 할지를 간단히 생각해보기로 한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통일준비를 하는데 고려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일 유형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통일 이후 남북한 보건의료체제 수립은 통일의 유형 및 그 과정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평화적인 통일 여부, 급진적인 통일인지 단계적인 통인인지의 여부, 통일 이후 만들어질 통일국가가 연방제적 성격을 가질지의 여부 등이 보건의료 통합에서 북한 보건의료인들의 주체적 참여 수준, 북한지역에서 이루게 되는 보건의료체계의 유형, 북한 보건의료 체계 수립에 소요되는 재정의 충당 방식 등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관련 통일 준비는 다양한 통일 시나리오 각각에 대한 대응방안을 만드는 것이 필요로 된다.

둘째, 보건의료의 긴급성과 연속성에 대한 고려를 동시에 하여야 한다. 보건의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통일 이후 보건의료의 전체적 그림이 다 그려지기 전에도 이미 현장에서는 당장 무언가가 긴급하게 이루어져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응급환자 진료, 감염병 관리 및 예방, 모자보건 사업, 백신 사업 등은 생명과 직결된 그 긴급성 때문에,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나 즉각적이고 응급적인 대응만으로 보건의료에 대한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국가 경제의 큰 부분이 보건의료 재정으로 지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보건의료 체계가 구축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통일 이후 남북한 지역, 특히 북한 지역에 어떤 보건의료체계를 갖추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셋째, 보건의료가 가지는 상징성과 의미를 고려하여야 한다. 통일 이후 일정기간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남한 및 북한 지역의 사회, 경제적 격차에 따른 사회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건의료 관련 사항들은 특히 북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과거 북한 체제에서는 공산주의 사회가 가지는 장점을 ‘무상교육’ ‘무상의료’라고 교육받았고, 비록 북한의 경제 상태가 나빠지면서 실제적으로 북한에서는 무상의료가 무너진 상태로 지내왔지만, 여전히 국가가 국민의 보건의료 문제에 대하여 무상으로 지원하는 책임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사안은 단순히 보건의료적 차원을 넘어, 통일 정부가 북한지역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우하는지를 느끼도록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상징적인 사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보건의료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은 보건의료적 차원을 넘어서는 통일된 한반도 안에서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가 될 것을 고려하고 이에 대한 판단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소요되는 재정에 대한 현실적 접근과 국민 동의가 필요할 것이다. 북한지역 보건의료 관련 정책 논의와 결정에 있어 북한지역 주민들의 의견과 함께, 남한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중요할 것이다. 남북한의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하여, 북한지역 지원 및 개발 그리고 보건의료에 대한 재정 상당 부분은 일정 기간 남한이 상당 부분을 담당하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 남한 주민들의 동의가 그 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남한 주민들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지원 논리와 방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하면서 향후 보건의료영역에서의 통일준비를 하는 구체적 영역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먼저 통일 이후 남북한 보건의료통합의 목표와 원칙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헌법적 기본권으로서의 건강보장을 어떻게 보고, 재정 문제 등을 어떻게 할지 등이 같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추진 체계 기구구성과 추진 단계, 추진 영역의 구성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단계별 세부 실행계획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 파악과 필요 평가, 핵물질이나 화학물질 관리와 연관되는 보건 안보(health security) 관리, 급성 감염 질환과 만성감염 질환의 관리,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의 단계, 북한 보건의료 인력의 운영 및 재교육 과정 수립, 남북한 보건의료 인력자격의 평가와 통합 관련 사항, 국제기구 및 남한의 자원봉사 집단과 정부 활동의 협력 체계 구축, 양·한방 체제의 향후 운영 계획, 보건의료 관련 법 제정 등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준비는 특정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 의하여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지, 정부는 통일준비를 가장 중요한 국가적 아젠더로 설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 준비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만들어질 새로운 정부에서 통일준비를 체계적으로 이루어 갈 수 있는 기구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에 있어 보건의료 영역의 구체적인 준비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통일 과정의 성패를 가를 중대한 사항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현재 몇몇 의과대학이나 의료기관에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통일보건의료 관련 기구들의 활동이 더 활성화되고, 아직 그런 기구들이 없는 곳에서도 그런 기구들을 만들고, 그러한 기관들 및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학자들, 보건의료인들이 함께 모인 통일보건의료학회와 같은 연합적인 성격의 기구들이 더 활발하게 활동하여 통일준비를 이루어 가기를 기대한다.

보건의료인이란 인간의 고통과 그 고통을 만들어 내는 원인들에 대항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인간과 사회의 고통을 만들어 내는 가장 크고 근본적인 원인은 분단이다. 그러기에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한반도의 보건의료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책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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