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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상업성에 밀린 의학
정지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우리가 의학이라 번역하는 medicine이란 단어는 medical knowledge(의학) medical technology(의술) medcal care(의료) 이 세 단어를 함축하는 말이다. 그래서 medicine의 바른 번역은 의학이 아니고 ‘醫’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하는데, 꼭 틀린 번역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medical knowledge가 medicine을 대표하는 단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소위 말하는 ‘학문으로서의 의학’은 홀대를 받고 있다. 돈이 안되는 학문은 개도 물어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의학교육의 위기, 기초의학의 위기를 말해 봤자 남의 일일 뿐이다.

지난 수 십 년간 사람들은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런 현상을 걱정하고 있는데, 적어도 사람들이 이런 저런 걱정을 하는 동안에는 그리 심각한 위기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의학은 가만 놔둬도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고 있다. 그것이 진실로 위기이다. 의학의 위기는 국민 건강의 위기이다. 의료는 공공서비스이고, 의학이 공공의 안녕을 위해 필수적 학문이라면, 국가는 의학 교육과 의학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거친 규제의 그물을 통해 의료를 압박할 뿐 학문적 생존을 위한 투자는 없다. 의학은 ‘설사가 나오려는 것을 꼭 쥐어 참고 있는 항문의 위기’에 처한 학문인데 누구도 이를 걱정하지 않는다.

해마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계절이 되면 사람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타야 나라다운 나라인 것처럼 한마디씩을 한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 제일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데려간 의과대학에서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생리의학상 후보 한 명도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 하면서 가만히 놔두어도 곧 죽어 넘어갈 것 같은 의료계를 비난한다. 노벨생리의학상은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상관없이 매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제갈 길을 묵묵히 가는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영예이다. 그 연구 결과가 특허가 몇 개인지와, SCI 저널에 실린 논문의 숫자로 평가되어진다면 길고 긴 세월에 걸친 깊은 학문적 연구가 이어지기 힘들다. 아인슈타인은 논문을 많이 써서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특허가 많아서 유명한 사람도 아니다.

오바마도 부러워한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비정상적 작동 속에서 붕괴를 맞고 있다. 그를 지탱하는 학문으로써의 의학은 수익 구조가 열악한 의료시스템으로는 자체 투자의 여력이 없다.

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의학적 지식의 수준도 엄청 발전할 것이고, 미래는 단순한 의학지식은 인공 지능에 의해 빠른 속도로 제공될 것이다. 지금 예상하기로는 그 지식은 우리 것이 아닌 외국의 지식일 것이다. 의학이라는 학문적 고유한 특성에 맞춘 국가의 대규모 교육, 연구 투자가 없다면, 우리 고유의 민족적 특성이나, 사회적 특성을 갖춘 의학 연구는 없다. 또한 인류를 구할 연구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의학 지식을 만들어 내는 창의력, 새로운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는 판단력, 이런 것은 인공지능에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므로, 의학대학과 교육병원의 교육과 연구는 이런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나.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창의력을 바탕으로 학문적 지식을 생산하기에는 너무 열악하다. 정부는 연구 중심병원 사업이 창조 경제를 통한 우리의 미래 핵심 먹거리를 만드는 사업이라는 믿음을 갖고 의학의산업화와 상업화에 그 무게를 두고 있다. 병원은 투자하면 돈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그러겠지만, 그 병원을 지탱하는 의과대학과 교육병원에 정부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무 쓸 모 없어 보이는 연구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노벨상도 나오고,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특허 기술도 생산 될 것이다. 인공 지능에 새로운 지식을 장착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새로운 지식을 이해 할 수 있는 교육, 꿈같은 새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교육이 “학문으로서의 의학”의 영역이다.

이 부분을 의과대학과 교육병원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학문적 근거를 통해서 이루어 내야 한다. 그 근거를 만드는 곳이 의과대학이고, 교육병원이라 믿는다. 연구중심 병원이 바로 교육병원이고, 교육병원이 바로 의과대학의 부속병원이다. 이곳저곳 의과대학을 만들겠다는 곳은 많은데 의과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은 없다. 재벌이 세운 거대한 기업형 병원은 의과대학의 협력병원일 뿐, 기업의 운영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교육과 의료를 행하는 현장에는 국가의 공공 기금이 투자되어야 그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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