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사회(2019년) 및 초고령사회(2026년)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성 ‘치매’ 발병률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치매 치료 및 관리를 위한 국민 부담이 가중되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노동생산성의 저하 또한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질병은 고통스럽지만 치매처럼 무서운 병도 드물다. 치매는 환자를 육체적으로 약화시킬 뿐 아니라 정신까지 파괴해버리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를 숨지게 하고 동반 자살하는 등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소식들은 이제 한 가족의 비극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치매에 걸린 늙은 부모나 배우자를 비참한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도 동조자이자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평생을 자식과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식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생을 마감하길 소망하고 있다. 노년기에 치매을 앓는 경우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돌봄과 부양부담을 가중시킨다.

홍성익

지금 세계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의 돌봄과 보호를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는 이른바 ‘수발(노인장기요양)의 사회화’를 복지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인 것으로 미국(2012년), 영국(2013년), 일본(2014년) 등 주요 국가들도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진단, 치료 및 환자 케어를 위한 연구 개발에 재원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우리는 절대적인 수명보다는 삶의 질을 포함하는 건강 수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치매를 예방하고, 조기 진단을 통한 적절한 치료와 케어로 치매의 진행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연구 활동은 바로 미래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급하고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로 고통받고 있는 노인의 수는 약 65만명에 달한다. 치매 노인환자의 수가 2020년 84만명, 2030년 127만명을 넘어 2050년에는 지금의 4배가 넘는 271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치매 예방 및 치료뿐만 아니라 돌봄과 보호를 위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오는 2030년대 후반 연간 국가 치매 관리비용이 국방비를 추월하고 2050년엔 106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 대비 치매환자 비중이 급증하면서다. 치매가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사회적 질환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치매 관리비용 급증은 노인가구의 삶까지 위협한다. 치매환자 1명당 연간 관리비용은 2015년 기준 2033만원. 2015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기준 연간 노인부부 가구소득(2582만원)의 78.7%에 달한다.

일찍이 전재희 전 보건복지가족부장관(현 보건복지부)은 지난 2008년 9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제1회 치매극복의 날’이자 ‘제 14회 세계치매의 날’(9월 21일)을 앞두고 치매와의 전쟁을 시작한다고 선포하고 치매노인에 대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종합적․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치매를 ‘노망’으로 치부하고 숨기려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일상생활에 치명적 어려움이 없으면 치료를 미루는 경향으로 인해 상당수의 치매환자가 방치되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앞으로는 국가차원에서 치매를 조기발견하고 치료하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모든 질병이 그렇듯 관리보다 예방이 우선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흡연 등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것들을 피하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30분 넘게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는 등의 치매 예방 행동수칙을 각자가 숙지하고 이행하는 이야말로 가장 좋은 대책이다.

이와 함께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 역시 시급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치매를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려 애쓸 뿐 아니라 치매환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치매환자를 덮어놓고 요양기관에 수용하기보다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환자가 가족을 알아보지 못해도 감정적 소통을 통해 사랑을 느낀다’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치매는 물리적 대책 뿐 아니라 결국 인간의 사랑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질병임을 깨달아야 한다. ‘치매와의 전쟁’이 성공하려면 전문인력과 시설이 필요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가 시행됐다지만 치매환자는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기피대상이다. 전문인력이라는 요양보호사는 기존의 간병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처럼 치매환자를 맞춤형으로 하는 시설과 인력 수급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환자 중 일부는 노인장기요양제도의 사각지대에 남아 여전히 가족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만일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수발(장기요양보험)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개혁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 고통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함께 나누는 성숙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을 위한 계획이 아닌, ‘수발의 사회화’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국정철학과 실천의지가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을 치매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고 품위 있게 만드는 길은 중앙․지방정부, 민간, 가정의 3대 주체가 함께 가지 않고서는 해결이 ‘요원(遙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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