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의학원 산하 방사선 재난 대응 의료컨트롤 타워 역할
비상진료 훈련부터 요원 양성까지 전방위 로드맵 구축

원자력 폭발 사고의 재난을 다룬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재난을 다룬 픽션 영화 ‘판도라’. 영화는 원전과 방사능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관객들을 자극해 방사선 피폭의 공포감을 높였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 대부분은 원전사고 발생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상황에 집중돼 의료적 관점에서의 환자 치료 및 사후 관리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이에 일간보사·의학신문은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조민수 팀장과 함께 방사선 피폭과 선량, 환자치료 로드맵, 대응체계, 센터의 역할 등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짚어본다.

■ 직원 및 구급대원들이 방사능에 노출된 후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
방사선 피폭 환자의 경우 피폭량과 유형에 따라 임상증상은 달라진다. 우선 방사선 흡수선량이 1그레이(1Gy=1,000mSv) 미만이면 임상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 방사선 방호의 목표와 원칙에 의한 연간 유효선량한도는 일반인의 경우 1mSv며 방사선작업종사자는 50mSv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5년간 100mSv, 수시출입자 및 운반종사자는 12mSv다.

영화상에서 원자력 발전소 직원 및 구급대원들이 방사능에 갑자기 노출되는 장면처럼 한 순간에 1Gy 이상의 방사선에 피폭된 경우에 급성방사선증후군(Acute Radiation Syndrome, ARS)이 발생한다.

급성방사선증후군은 구토, 멀미, 체온 증가 등을 동반하며 손상된 장기에 따라 조혈계증후군(>2~3Gy), 위장관계증후군(5~12Gy), 신경혈관계증후군(>10~12Gy)으로 나뉜다.

또한 방사선 화상이라 불리는 ‘국소 방사선 손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신체 일부가 방사선에 집중적으로 피폭돼 피부, 뼈, 혈관, 근육 등에 손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역치 선량에 따라 짧게는 2~3일, 길게는 수개월 안에 발현되며 발현 시간 또한 수 분에서 수 시간부터 4주 이상까지 다양하다.

즉, 많은 양의 방사선에 피폭 되더라도 순식간에 많은 피를 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

조민수 팀장은 “방사선 상해의 특징 중 하나가 잠복기가 있다는 것인데 엄청나게 많은 방사선에 피폭이 되면 의식을 잃고 기절하기도 하지만 다시 깨어난 상황에서는 한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기간이 있다”며 “영화처럼 피를 토할 수도 있지만 실제 방사선 때문에 피를 토한다기보다는 말로리바이스증후군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 피폭 환자를 제염하고 치료하는 장면
영화 판도라에서 원자력 사고 현장에 투입된 의료진이 방사선에 피폭된 환자의 옷을 벗기고 샤워를 시키듯 몸 전체를 씻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방사선 피폭환자에게 제염을 실시하는 장면

이는 방사능에 오염된 시설 및 인체를 씻어내는 ‘제염’이다.

제염은 △방사선 오염 계측기를 이용한 오염 검사 △조기제염(습식 및 건식) △오염확대 방지 △제염 후 오염검사 △제염 완료 후 폐기물 처리 순으로 이뤄지며 의복 제거 및 샤워를 통해 95% 이상 제염이 가능하므로 피폭 환자 및 시설 처리 대응에 있어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는 조민수 팀장의 설명이다.

특히 습식 제염은 폐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급적 건식제염을 실시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전신샤워 등 건식과 습식의 병행이 이뤄진다.

피폭 환자의 치료는 상해자 유형과 임상 경과에 의해 달라지는데 임상 양상은 전구기(수 시간), 잠복기(수 일~수 주), 임상 발현기(수 주~수 개월), 사망 및 회복의 단계를 거친다.

공기를 통해 방사선 물질을 흡입해 신체 내부가 오염됐을 경우에는 착화제 및 수분 섭취로 배설을 촉진하고 감청제로 소화관 흡수를 방해하거나 요오드화 칼륨을 투약해 예방적으로 갑상선을 보호한다.

단, 내부오염 치료 및 방호약품 사용은 20~200mSv 이상의 내부피폭일 때 사용이 고려된다.

조민수 팀장은 “피폭증상이 높으면 전구 증상도 심하게 나타나고 잠복기도 짧아 임상증상들이 심하게 발생하는 패턴을 보인다”며 “과피폭 환자는 임상발현기에 나타난 증상과 상황에 따라 치료를 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 팀장은 “무조건 피폭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부터 적용하지는 않는다”며 “피폭으로 인한 임상 증상이 발현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고로 인한 외상으로 생명이 위협 될 경우 응급치료를 우선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 사고 장소 인근에서 현장 의료팀이 진료소를 꾸리고 대응하는 장면
영화에서도 표현된 것 처럼 방사선 복합 재난 발생 시 사고 현장에는 '합동방사선비상진료센터'가 설치된다.

비상진료센터는 방사선 상해자를 중심으로 한 ‘현장방사선비상진료소’와 일반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장응급의료소’로 구성돼 상호 협력하게 된다.

이때 센터는 중증도 및 피폭·오염 정도에 따라 복합손상 다수 사상자를 분류·분산하고 제염이 필요하면 제염 과정을 거쳐 긴급 의료대책 및 인근 응급의료기관으로의 후송을 지원한다.

복합재난 발생 시 현장의료 대응 센터 전경.

조민수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장비상진료센터에는 한국원자력의학원 뿐만 아니라 중앙응급의료센터, 국군의무사령부, 보건소, 소방서 등의 전문 인력이 투입돼 각자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공유해 대응한다.

특히 방사선 재난 시 보건소는 병원과 간호대학의 협력을 받아 심신장애자 상담 및 건강관리 지원을 총괄하고 구호소를 방역하며 방호약품 수송, 기타 의약품 확보, 비상계획구역 내 재해약자 대피 등을 주도하는 역할에 주력한다.

한편, 조민수 팀장은 방사선 사고 현장에 투입되는 의료진의 안전을 확보하고 대응팀이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방사선 방호의 목표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이는 영화 내용 중 간호사 1명을 제외한 모든 의료진 및 대응팀이 피폭환자를 두고 대피하는 장면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조 팀장의 지적이다.

조 팀장은 “의료진이 방사선 사고 현장에 투입되는 모든 상황은 ‘정당화가 확보’되고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개인선량한도 내’에 ‘방사선 방호 최적화’를 밟은 상태이기 때문에 의료진들이 환자를 대할때 두려움을 갖거나 우려할 정도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사고 현장에 투입된 방사선 대응팀이 통제구역을 설정하는 장면

진료구역 통제구역 설정 예시(사진 위)와 실제 방사선비상진료센터내에 구역이 나눠진 핫존, 웜좀, 콜드존(사진 아래). 진료현장 바닥은 제염을 마친 방사선 피폭 환자들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수분을 흡수 하기 위한 방수제가 깔려있다.

방사선 사고가 발생하면 지역민과 의료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에 통제영역이 설정된다.

통제구역은 ‘사고현장 통제구역 설정’과 ‘진료영역 통제구역 설정’ 개념으로 나눌 수 있다.

두 구역 모두 콜드존(Cold Zone), 웜좀(Warm Zone), 핫존(Hot zone)으로 불리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사고현장 통제구역은 풍향과 방사선 선량한도를 기준으로 콜드존 내에는 경찰 및 현장지휘본부가 위치할 수 있고 웜존에는 임시시체, 폐기물 등이 보관되며 핫존은 방사선관리구역으로 과학수사구역이다.

진료구역 통제구역 또한 피폭 환자를 분류하고 제염 및 처치가 이뤄지는 핫존, 콜드존과 핫존의 경계를 구분하는 웜좀, 비오염환자 진료와 후송영역인 콜드존이 존재한다.

■ 영화에서 표현되지 못한 방사선 재난 의료대응 컨트롤 타워

한국원자력의학원 산하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는 방사선 재난시 의료대응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사망한 지역 주민 60여명은 방사선 피폭 때문이 아닌 버스 안에 장시간 대기하는 과정에서 탈수, 저체온, 기저질환 악화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원전 사고 의료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판도라 영화 속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내부오염 측정기기인 침대형 전신계수기(왼쪽)와 입식 전신계수기.

한국원자력의학원 산하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의 첫 번째 역할이 방사선 재난 의료대응 컨트롤 타워라고 소개하며 조민수 팀장이 꺼낸 말이다.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는 지난 2002년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방재대책법 제 39조’에 의거해 정책기획부, 비상진료부, 방사선피폭연구부, 방사선선량평가부 등 4개의 조직으로 구축됐으며 세부 주요기능은 평시와 비상시로 구분된다.

평시에는 △방사선비상진료 네트워크 구축·운영 △방사선비상진료 교육 △방사선영향 클리닉 운영 △방사선 관련 R&D △피폭선량연구 등의 업무를 맡고 비상시에는 △초동 의료대응 △초기병원 대응 △피폭환자 집중치료 등에 집중한다.

즉, 방사선 피폭 환자 진료와 치료에 특화된 센터라는 의미다.

센터 내 방사선비상진료실에서는 피폭 환자의 피폭 선량을 측정해 중증도에 따라 분류하고 치료 우선순위를 정한 후 수술실 및 병상으로 이송한다.

조민수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팀장이 센터 내 시설과 장비 인프라 및 음압격리병실을 설명하고 있다.

다수의 제염실과 폐기물 처리 시설도 설치돼 있으며 특히 내부오염 측정기기인 입식·침대형 전신계수기(Whole body counter)와 알파·베타·감마선 방출 핵종 분석기 같은 장비들도 위치해 있다.

또한 방사선에 의해 손상된 DNA를 염색체 분석을 통해 찾아내고 염색체 이상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피폭선량을 계산하는 방법인 ‘생물학적선량평가’를 위한 시설도 마련돼 있다.

1인실인 음압격리병실은 총 13개 병상으로 차폐 벽이 출입구와 병상사이에 존재하고 공기 및 폐수, 폐기물 등은 별도의 방사선 평가를 거친 후 처리된다.

아울러 방사선비상진료용 현장진료소 장비, 계측장비, 의료장비, 연구장비, 각종 물자 포함 총 167종 1,001점의 장비와 물자가 비축돼 있으며 갑상선방호약품 및 내부오염치료제 등 약품 인프라도 보유하고 있다.

■ ‘First In Last Out’을 준비하는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조민수 팀장은 대규모 방사선 사고를 겪은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는 의료인조차도 방사선 재난 발생 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에 센터는 혹여 발생할 수 있는 재난 상황에 대비한 컨트롤 타워의 역할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방사선 재난 대비 훈련부터 비상진료요원 양성까지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즉 신규, 보수, 해외연수, 특성화 등의 비상진료 교육과 민관군 합동훈련, 병원대응 훈련, 방재 훈련 등의 고강도 훈련을 실전 형태로 실시해 비상진료요원과 의료진의 대응능력 강화 및 고도화에 힘을 쏟고 있다는 조 팀장의 설명이다.

조민수 팀장은 “방사선 재난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협업이 핵심인 만큼 방사선비상의료지원팀(K_REMAT)과 재난의료지원팀(DMAT)의 능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에 분포된 방사선비상진료기관 현황(사진 위)과 민관군 합동훈련, 병원대응 훈련, 방사능 방재훈련 장면(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또한 국가 비상 상황 시 원자력의학원이 전국의 모든 지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센터는 총 23개의 의료기관을 방사선비상진료기관으로 지정해 방사선사고 시 신속한 의료대응과 진료수준 제고를 도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 팀장은 “가장 먼저 의료진들에 대한 평소 교육이 중요하기에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방사선재난의료교육 프로그램과 국가방사선방비체계를 설명하고 이해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별도의 방사선 교육훈련 센터를 설치·운영해 모든 의료진들이 방사선 비상대책의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는 평소 누구나 궁금해 할 수 있는 방사선과 관련된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 작은 역할부터 재난 발생 시 의료대응 컨트롤타워로서 안전하고 정확하게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 할 수 있도록 하는 표준 마련에 모든 역량을 집중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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