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주 공유국과 협의 필요해…다국적사들, ‘백신 생산 지연으로 인한 피해 우려’

나고야의정서로 인해 WHO 통제 기반의 계절성 인플루엔자 백신 공급이 지연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WHO 통제 기반이 아닌 국내 또는 아시아권에서 자체 백신 균주를 선정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15일 학계와 백신 업계 등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월 내부 회의를 열고 나고야의정서가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 특히 백신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생산을 위한 균주, 즉 병원체 자원은 흔히 나고야의정서로 불리는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 자원 이용자가 자원 접근 및 이용 시 공유 당사국과 이익 공유를 위해 PIC(Prior Informed Consent, 사전통보승인)과 MAT(Mutually Agreed Terms, 상호합의조건)을 맺어야 한다.

문제는 제약사들이 인플루엔자 시즌 시작 전에 변경된 권고안을 백신에 반영,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리는데, 이익 공유를 위한 협상은 최소 몇 개월이 걸린다는 것이 학계의 관측이다.

세계 여러 국가에 백신을 판매하고 있는 다국적제약사들은 WHO 산하 백신위원회의 인플루엔자 유행 예측에 따른 균주에 맞춰 생산을 진행하기 때문에 백신 생산 지연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생물다양성협약이 ‘특정 국가에서 발생한 계절성 인플루엔자의 바이러스 샘플을 사용하여 백신을 생산하기 전에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과 지적 재산권을 공유하기 위해 해당 국가와 계약을 맺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미 과부화된 백신생산 스케줄을 더욱 지체시키는 요소라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WHO는 GMBSM(세계다자간이익공유체계)에 준하는 방식, 즉 각각의 백신 균주에 대해 개별협약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WHO를 통해 공유 당사자국과 자동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 WHO 백신 균주 탈피, 가능성은?

이와 같은 상황은 아직까지 백신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업체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백신개발에 참여했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면서 ‘정부가 한중일 3개 국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백신 균주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 백신위원회가 선정하는 백신 균주가 미국과 유럽에 좀 더 적합하도록 치중돼있어 아시아권이 소외되는 점, WHO 백신위원회가 세계적으로 백신을 대량 생산하는 다국적제약업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등이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국내 업체들이 WHO 백신 균주 탈피를 심각하게 고려하기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우선 인플루엔자 백신을 수출하는 기업의 경우 WHO로부터 국제 조달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적격심사(PQ)를 받아야 하는 만큼 WHO 백신 균주 권고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제약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WHO 백신 균주 탈피가 달갑지 않은 방식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과연 누가 백신 균주를 선택할 것인가’이다. 국내 백신위원회의 신뢰성이 과연 WHO 백신위원회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WHO가 가진 고민은 전세계적인 고민이기 때문에 따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대응할 필요성도 떨어진다”면서 “다만 이번 이슈는 과연 지역적 특색 고려가 불충분한 백신보다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좀 더 적합한 백신을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에 좀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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