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보건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을 발표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는 손안대고 코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보건의료 수준의 향상을 위해 병원을 쥐어짜는 수준의 기준만 발표하고 여기에 안 맞추면 탈락시키겠다고 겁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로는 의료는 공공재임을 천명하면서도 정부는 단 한 푼의 재원도 투자하지 않고 사적 영역의 재산을 거저먹으려는 행태이다.

정지태 교수(고려대 의인문학교실, 의사평론가)

지난 1기, 2기 지정기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중증도를 따지는지 무식한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간다. 김수환 추기경도 김대중 대통령도 돌아가실 때는 결국 폐렴으로 돌아가셨는데 폐렴은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중증도가 B급이다. 중환자실로 입원을 하든, 기계호흡을 하든 ECMO를 돌리든 다 중증도가 B급이다. 중증도가 높다는 말은 이로 인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과는 다른 무슨 숨겨진 뜻이 있는 모양이다.

암이란 진단이 붙으면 무조건 중증도는 A다. 암이 중증도가 낮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사망률이 높은 질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조기진단으로 100%의 5년 생존율이 기대되는 암이나, 80%의 사망이 예상되는 말기 전이 암이나 다 같이 중증도가 A인 것은 뭔가 억지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중증도는 입원환자에서만 따지기 때문에 병원들은 아무리 치료약제의 효과가 좋아져서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라 하여도 항암제를 투여하는 날 환자를, 외래로 구분되는 Day Care Center에서 치료하기가 망설여지는 구조다. 하루라도 병실로 입원 시켰다가 퇴원하게 해야 병원의 중증도를 높일 수 있으니,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병원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덕목이라고 외치는 '환자중심의 의료'는 제도적으로 막혀있다고 보아야한다. 정부가 나서서 의료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막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추가된 기준을 보면 저런 짓까지 해가면서, 수익구조를 악화 시켜서라도 상급종합병원에 끼어 있어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 그 잘난 간판 때문에? 돈도 안 되는 간판 따느라 추가된 시설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 병원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익 창출 방법은 무엇일까? 장례시설의 고급화? 병원 내 상업시설의 확대? 비 보험진료 수익 증대? 진료시간 연장? 주말진료 확대? 교육투자 축소, 원가절감을 위한 저가 재료 사용, 더 나아가 의사인력 대체를 위한 불법적 PA 활용 허용 등 대충 이런 것들이 아닐까?

병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내 임기 중 상급종합병원 탈락을 어떻게든 막아보는 것이 첫째이겠지만, 이제는 스스로 주판알 튕겨보고 '상급종합병원'이라는 명칭을 얻기 위한 노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나는 병원 경영자 자격 DNA가 없는 사람인가 보다. 더욱이 의료전달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왜 상급종합병원이란 제도가 필요할까 그것이 나는 궁금하다. 계급장 다 떼고 진흙탕에서 싸우는 마당에 빛나는 간판은 전혀 필요 없을 것인데 말이다.

진정 보건의료 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꿈꾸는 정부라면, 평가를 통해 수준이 떨어지는 병원을 탈락시킬 것이 아니라 지원금을 투자하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은 정책이 아닌가? 이제 대한민국은 1960년대의 못사는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가진 보건의료에 대한 정책수준은 경제후진국 시대보다 낙후된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로 우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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