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편집부국장

'건보 부당청구 연간 6000억 새는데...구멍 막을 뾰족수가 없다'

며칠전 유력일간지가 보도한 내용인데 의사들이 엄청난 금액의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기사다.

의사 이미지를 깍아내리는 사례는 이번 같은 취재보도가 아니더라도 건보공단이 생산한 부당허위청구 통계를 통해 다반사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지난해 건보공단의 요양기관 부정청구 환수 내역을 보면 의사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2016년 건보공단이 부정청구라는 꼬리표를 붙여 환수한 금액은 6017억원으로,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런데 부정청구 내역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무장병원이나 불법 의료생협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94.3%이고 청구오류가 3.6%를 차지하는 등 절대 다수의 의사들과는 무관하다.

선량한 다수 의사들이 억울한 이유다.

부정청구와 연관해 의사들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는 일이 아직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진자조회'가 바로 그것이다.

수진자조회란 말 그대로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실제로 진료를 받았는지를 전화나 엽서로 확인하는 제도다.

건보공단은 일부 부정직한 의료기관들의 부당 부정청구를 방지해 다수의 정직한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일선 의사들이 느끼는 비애는 참담하다.

우선 의사를 예비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이 슬프고, 수진자 조회를 받은 환자들로부터 의혹의눈초리를 받아내는게 버겁다.

그럼 건보공단이 그토록 부정청구를 근절할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수진자조회를 통해 적발한 부당청구액은 얼마나될까.

환수금액은 0.18%(10억 8200만원), 환수건수는 0.9%(157건)에 불과하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 등 선진국의 음주단속 모습이 왜 떠오를까.

음주운전이 부도덕한 범죄행위라는데 다수가 공감하지만 대로(大路)를 막고 적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주운전을 적발한다고 길을 막으면 다수의 선량한 운전자들이 불편한데다 자존심에도 상처를 받는다는 선진문화의 배려다.

쥐꼬리만한 부정청구를 적발하기 위해 고집하는 수진자조회가 12만 의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할까.

수진자조회의 뒷켠에는 걸핏하면 국민들의 신고에만 의존하려는 건보공단 등 정부기관의 나태도 묻어난다.

사회적 폐악인 음주운전을 적발하기 위해 길을 막을게 아니라, 비록 고되고 힘들지만 음주운전 낌새를 찾아내 음주를 적발하는 공복(公僕,공공기관)을 가진 나라가 진정 선진국이 아닐까.

우리 건강보험은 의료 수요자인 국민과 공급자인 의사, 그리고 수요자와 공급자를 지원하는 건보공단과 정부가 그 주축이다.

건보공단 등이 건강보험의 핵심축인 의사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은 건강보험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된다.

입술이 없으면 잇몸이 시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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