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혁 교수
용인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대한비만연구의사회 자문위원

인류는 오랫동안 굶주림과 싸워왔다. 효율적인 동물 사육 시스템의 부재와 병충해, 가뭄이나 태풍 등의 자연환경에 의해 충분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뿐 아니라 여러 비타민과 무기질의 공급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나라 또한 상대방의 식사 유무를 묻는 인사가 사라진 것은 불과 수십 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명화라 불리는 그림이나 이전 사진들을 보면, 귀족이나 상류층의 사람들은 조금은 살이 쪄 있고, 곧 풍만함이 부의 상징처럼 그려져 있다. 아직도 가까운 북한이나, 아프리카에서는 뚱뚱함이 곧 그 사람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래서 일까? 예전 어른들은 음식을 가려 먹거나, 소식을 하면 입이 짧다거나, 복 없이 먹는 다며 타박을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회는 급변했고, 이제는 더 이상 배고픔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문제는 배고픔을 오랫동안 싸워 온 우리 몸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된 방식에 있다. 우리 몸이 알아서 잉여분의 에너지원을 배출해 주었다면, 지금의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심장질환은 상당히 발생률과 유병률이 줄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조금의 당만 소변에 검출되어도 당뇨병을 의심해야 할 정도의 정교한 재흡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아무리 지방이 많이 저장되어 있더라도 지방을 배출하거나 더 효율적으로 지방을 분해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는 않는 듯 하다.

또한 지방 조직은 우리 몸에서 가장 줄기세포를 많이 가진 장기중 하나로써, 과도하게 섭취된 탄수화물 또는 지방을 저장할 지방 세포가 부족하다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저장 창고 생산능력을 통해서 효율적이고 과도할 만큼 지방의 형태로 에너지원을 몸에 저장할 수 있다. 또한 지방 세포는 그 수명이 10년 가까이 길어서 한번 만들어진 지방 세포는 강산이 변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

문제는 지방 세포가 과도하게 지방을 저장할수록 그 기능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우리 몸에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있다. 저장 기능만 하는 줄 알았던 지방 세포가 왠만한 내분비 조직 이상의 호르몬과 싸이토 카인을 분비하며, 우리 몸의 면역과 혈압, 지방과 탄수화물 대사, 암의 발생과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방 세포가 더 많은 지방을 저장하게 될수록 위에서 기술한 역할을 우리 몸에 안 좋은 방향으로 하게 된다.

즉 혈압을 올리고, 면역 조절에 장애를 통해서 알레르기나 자가 면역 질환의 발생이 증가하며,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뿐만 아니라, 암의 발생을 증가시키는데, 흡연만큼이나 많은 암의 발생과 관련이 되어있다. 최근에는 지방 조직인 풍부한 유방, 대장 그리고 지방 조직으로 쌓여 있는 전립선과 심장 등의 중요 장기에서 지방 조직이 직접 그 장기의 세포와 소통하며, 변성이 되었을 때 그 조직에 치명적인 질병을 발생시키는 기전과 역할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 사회 또한 비만을 조장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우리의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늦은 밤까지 체육 활동시간이 없다면 거의 운동량 없이 공부만 하게 된다. 어제도 재수학원을 다니면서, 1년동안 20kg의 체중증가로 100kg 이 훌쩍 넘어버린 학생과 학부모가 체중 감량을 위해서 방문했으며, 최근에는 유학생들도 외국 생활 중 늘어난 체중을 빼기 위해 방학 중 많이 방문하였다. 또한 이러한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취업과 승진, 업무, 회식 등등 시간이 갈수록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체중이 증가하고, 지방 세포가 커지고 변성되는 방향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제 우리의 싸움 대상은 우리의 부모님 또는 그 이전 세대가 싸웠던 굶주림이 아닌, 그 만큼 강력한 건강의 적과 마주하게 되었으며, 그 이름은 비만이라는 질병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