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약대 100년사'…3.1운동·4.19혁명 등 역사 현장마다 약대생 사회참여 확인도

최근 발간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100년사'가 서울대 뿐 아니라 약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기술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보인다.

심창구 서울대 약대 100년사편찬위원회 위원장<사진>은 지난 20일 서울대학교 약학대학(학장 이봉진)이 개최한 발간기념회에서 이같은 중요성을 강조했다.

심 위원장은 "서울대 약대 100년사는 1910년부터 2016년까지 106년 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기록서로 약학대학의 설립이나 강의에는 모두 조선약학교, 경성약학전문학교와 서울대 약대 졸업생들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학교의 역사는 국내 35개 약대 공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심 위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현대 약학교육기관 설립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6월 12일 '조선약학강습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약학강습소는 약제사 면허 취득에 필요한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1918년 6월 21일 2년제인 '조선약학교'로 발전해 1923년에 3년제 본과 병설했으며, 1924년 3년제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1930년 5월 3일에는 3년제인 '경성약학전문학교'로 승격 개교됐다.

심 위원장은 "일제강점기에 싹트기 시작한 근대 약학교육은 엄혹하고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고 면면히 생명을 이어가며 100년간 발전을 거듭해왔다"며 "일제 강점기 조선약학교 선배들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경성약학전문학교의 선배들은 축구부 비밀결사 등을 통해 민족정기를 지켜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선약학교 당시 약 100명의 입학자 중 60여명에 달했던 한국인 학생 중 상당수가 퇴학을 당하거나 학교를 그만두고, 1920년 조선약학교 1회 졸업생 중 한국인은 10명에 불과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으로 광복이 되며 경성약전은 1946년 7월에 3년제인 (사립)서울약학대학으로 승격(1948년에 4년제 학부 병설, 1950년 3월에 제1회 4년제 졸업생 배출)됐으나,재단의 부실 및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1950년 9월 30일 국립서울대학교에 4년제 약학대학으로 편입됐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약대생들의 사회 참여는 계속 됐다. 6·25전쟁 발발시 서울대 약대에서는 3명의 재학생의 참전해 순국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추후 더 많은 참전 전몰자가 확인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19 혁명때에는 오전 위생화학 실습 등을 하고 있던 4학년 학생을 포함한 100명 이상의 서울대 약대생들이 실습가운을 입은 채로 시위에 참석했는데, 이같은 행렬은 동아일보에서 '의대생'의 행렬로 오인돼 보도되기도 했다.

경복궁 옆문에서 4·19혁명에 참여한 서울대 약대생들(출처: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100년사)

그외에도 1971년 박정희 정권에서 추진됐던 '대학교련교육 강화 방침'에 대한 서울대 총학생회 '교련 철폐 투쟁 선언' 등에 합류하고 등교를 거부하는 등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45년 10월 이화여자대학교 행림원에 약학과가 설립됐고, 1953년부터 1982년 사이 중앙대학교를 비롯한 18개 대학교에 약학대학 또는 약학과가 신설됐다.

20개 약학대학 시절은 상당한 세월동안 지속되다가 6년제 약학교육이 실시되면서 2011년 3월 가천대학교를 비롯한 15개 대학교에 약학대학이 신설돼 현재 전국의 약학대학이 35개에 이르게 됐다.

여기에 2009년에는 40여년간 약학계 숙원이던 6년제 약학교육이 출범돼 2014년 8월 첫 팜디졸업생 7명이 배출되는데 이르렀다.

심창구 위원장은 "이번 약학사를 정리하며 자료의 부실함이 부끄러우면서도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강하게 느꼈다"며 "이제야 비로소 '뼈대없는 약학계'라는 손가락질을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역사를 발전시켜온 선배들에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송구함을 조금이나마 씻게된 것 같아 매우 기쁘다"면서도 "능력부족으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빠뜨리거나 균형있게 다루지 못한 부분은 추후 보완 작업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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