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역 간 갈등만 고조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政, 인력 로드맵 재검토 필요성 인정

지난 8일 국회도서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이 창립 8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정책 토론회 자리였다.

그동안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정착을 위해 열린 수많은 토론회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무려 8명에 달하는 많은 수의 토론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한간호협회 김옥수 회장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홍옥녀 회장이 3시간에 걸친 토론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간호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대로는 서비스의 정착이 불가능하니 간호인력 배출을 늘려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 또한 총 15페이지로 작성된 '통합 서비스 개선과제 안'을 토대로 한 주장에서 간호 인력 간 업무 구분이 형식적일 뿐만 아니라 간호인력 수급난, 보조인력 비정규직 채용 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대한간호조무사협회까지 제도의 성공을 위해 간호조무사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모두 꺼내기 시작했다.

마치 토론자들 모두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제대로 준비되고 있지 않은 원인을 간호 인력 핵심 당사자인 ‘간호사’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은 아이러니 할 수 밖에 없었다.

토론 막바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간호협회 김옥수 회장이 일어나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간호사 대표 수장으로서 한마디를 전했다.

김옥수 회장은 “10년 동안 간호대학의 수가 67개가 늘어났고 내년에는 2만 명이 넘게 국시를 치를 예정인데 단순히 간호사의 수만 늘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지난해 의료법 개정 전까지만 해도 간호사의 대체 충당인력으로 간호조무사가 활동했는데 간호사는 대체 인력이 있다고 다들 생각하니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이 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김옥수 회장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홍옥녀 회장이 일어났다.

홍옥녀 회장은 “전국 모든 병원에 스카이(SKY) 4년제 간호사들로 인력을 구성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간호사는 간호를 하고 간무사는 그 밑에서 기본간호를 하면 되는데 왜 간호사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끔 해서 간호사들의 직무만족도를 떨어뜨리는가. 정부는 현재 제도하에서 간무사를 필요한 만큼 쓰면 된다”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간호 관련 단체 회장들이 한마디씩 덧붙이면서 토론회의 마지막 10분은 흡사 국감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성공의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해당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간호 인력에 대한 로드맵을 잘못 그린 정부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토론장에서 복지부와 건보공단 관계자는 ‘실패’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전면 확대 메뉴얼 재검토’라는 카드를 꺼냈다.

즉, 정부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있어서 간호인력 수급의 문제를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한 꼴이다.

고영 건보공단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단장은 “정부가 2018년 전면 확대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유휴간호사가 어느 정도 뒷받침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며 "간호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를 비롯한 오늘 토론회에서 오고간 모든 이야기들을 새겨듣겠다”고 전했다.

이창준 복지부 보험정책과장도 “간호인력 수요와 공급을 면밀하게 분석해 현실에 맞는 로드맵을 다시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 동안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관련된 토론회 및 간담회가 얼마나 많이 열렸는가. 이제야 ‘면밀하게 분석해 현실에 맞추겠다’니 당사자들은 기가 막힐 수밖에.

결국 정부의 잘못된 간호 인력 로드맵이 병원, 간호사, 간호조무사들 모두가 직역 이기주의에 빠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며 특히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간의 중재 역할은 커녕 갈등만 부추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너무 과한가.

토론회의 막이 내린 후 국회도서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김옥수 회장과 홍옥녀 회장은 짧은(?) 악수를 나눴지만 어색함이 묻어났다.

누가 그들의 악수를 어색하게 만들었나.

정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서 만큼이라도 '성공적 정착과 국민 의료 질 향상'이라는 대전제 아래 직종 간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약속한 로드맵 재설정을 명확히 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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