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1일 오전 김정룡(金丁龍) 박사가 서울대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9월 26일에 입원했었다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김 박사의 별세가 나에게는 집사람이 별세했을 때 받았던 충격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김 박사와 필자의 특별한 관계는 많은 분들이 주지하고 계신 까닭에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005년 7월부터는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어 필자와 함께 자연과학부 제4분과 회원이 되어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분과회의 토론을 하고 난 후에 학술원에서 멀지 않는 ‘Chai’라는 중국식당에서 만찬을 드는 것이 정례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 4분과의 14명 회원들은 참으로 우의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며 타 분과회원들의 선망을 받을 정도입니다.

만찬회에서는 마음 놓고 무슨 말이던 할 수 있으며, 필자는 우리 4분과를 ‘마음의 고향’이라고 여러 차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4분과회의나 만찬회에 참석하면 누구나가 마음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김 박사는 ‘간 박사’라는 별명으로 불리 울 정도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김 박사는 B형간염예방 접종인 ‘Hepavax’를 창제하여 국민보건향상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Hepavax가 간염 예방은 물론이고, 간암 예방에도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예방의학자이자 암 역학자로 유명한 서울의대 명예교수인 안윤옥박사와 연구하고 국제전문지를 통해 발표하여 큰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또한 C형 간바이러스 단백질을 환자의 혈청에서 분리하여 학계에서 지극히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 박사는 대한의학협회 학술상, 호암상, 서울대 관악대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을 수상했는데 호암상은 ‘hepavax’ 창제를 축하하는 상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문저서와 논문을 발표했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필자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앞에서 썼는데 여기서는 한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필자는 1960년에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박사논문의 제목은 ‘한국인 혈액에 관한 연구-한국인 혈액정상치(서울대 논문집 제8호, 1959)’였습니다. 이 연구에는 많은 교실원이 협조했는데 특히 의대학생 팀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 합니다. 그런데 학생팀을 이끌어준 학생이 바로 김정룡 박사(당시 의대 4학년)였습니다.

김 박사는 2년 전에 식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결과는 대단히 양호했으며, 좋아하던 술도 다시 먹을 수 있을 정도였고, 학술원 4분과 모임에서는 여전히 그 존재를 과시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되었는지 암이 폐에 전이되어 9월 26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결국 2주일 만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애통한 일입니다. 많은 국민들에게 건강을 배급해주던 김 박사가 어찌하여 선배인 필자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미안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천명이지요.

필자는 12일 오후 2시쯤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문상했을때 영안실 벽에 걸려있는 고인의 영정을 한참동안 올려보면서“어째서 먼저 가는 것이요. 이왕 먼저 갔으니, 잘 쉬면서 나의 자리 마련해 줘요.”라고 부탁했습니다. 빈소에서는 오래간만에 부인 한정애(韓貞愛) 여사를 만났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고 한심석 총장님의 장녀이신 한 여사를 만나니 옛날 일들이 주마등 같이 나의 앞을 스쳐가면서, 이일 저 일이 그리워졌습니다.

김 박사가 창설한 서울대 간연구소에는 고 한 총장님의 동상이 있습니다.

한 총장님과 김 박사는 서로를 무던히 아끼고 격려하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한 총장님께서 맏사위 김 박사를 반갑게 맞아주실 것을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하고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총장님이나 김 박사와 같이 빛나는 업적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밝은 등불을 켜주신 분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 박사는 한 총장님의 지도를 받아 참으로 위대한 삶을 보냈다고 믿습니다. 김 박사가 남긴 여러 위업들은 영원히 이 세상에서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김 박사가 하늘에서 평화롭게 쉬면서, 우리들을 보살펴주기를 기원합니다.
/ 권이혁 전 보사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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