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병원 PS R2 박종옥

건국대학교 성형외과학 교실에서는 매년 추석 연휴에 우즈베키스탄 내 카라칼팍 자치공화국의 초청으로 의료봉사단체 ‘프렌즈’와 함께 약 1주일간 공화국의 수도인 누쿠스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갑니다.

봉사활동은 불소 양치사업을 비롯한 치과와 내과, 소아과 진료 및 성형외과 수술로 구성됩니다. 우리 성형외과는 성형외과 팀의 주축을 구성하며 주로 구순구개열 수술을 담당하였습니다.

봉사활동에는 본원에서 정년을 맞아 퇴임하신 강동성심병원 엄기일 교수님과 본 교실의 김지남 교수님, 전공의가 참여하였고, 박진석성형외과 원장이신 박진석 선생님 및 그 간호사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출발 전에 ‘프렌즈’ 모임을 통해 누쿠스지역에서 진행될 진료활동 사항들을 교육 받았고, 또 이전에 다녀온 선배 전공의들에게 봉사활동에 대한 마음가짐이라던지 현지에서 주의할 점 등 많은 조언도 들었지만 공항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매년 추석 연휴에 진행되는 봉사활동이라서 올해는 가족들과 한가위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더 뜻 깊은 일에 참여한다는 부푼 기대를 가지고 참가하였습니다.

저희는 인천 공항에 모여서 진료활동에 필요한 짐부터 확인하고 보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짐은 의료장비와 의료소모품 등으로 크고 무거운 박스가 대략 20개 정도 되었습니다.

무겁고 많은 양이다 보니 비행기에 실을 개인 짐 대신 수술도구와 장비를 부쳐야만 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세관을 통과할 때에는 날카로운 수술기구들의 반입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세관 직원들이 있었지만 봉사활동에 필요한 물품임을 설명하자 눈에 띄게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환영해 주어서 입국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까지의 누쿠스 방문에는 항상 현지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나오는 등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고 했지만 올해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사망 후의 국장 기간으로 성대한 환영식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항직원들과 입국 수속을 밟는 현지 주민들이 저희 일행을 알아보고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입국심사를 마친 후 누쿠스의 고려인 대표 고마리나 회장님을 비롯한 현지 봉사팀을 만난 후, 당일 오후에 진행할 수술을 결정하기 위해 개인 짐을 풀기도 전에 병원으로 직행하였습니다.

이전 봉사활동 때는 누쿠스 응급병원에서 수술을 했었으나 현지 사정상 올해는 누쿠스 소아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몇 해 동안 손발을 맞춰오던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점은 수술을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아 병원에 도착하여 수술실과 진료실을 둘러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수술실의 무영등도 초점이 맞지 않았고 석션이나 전기소작기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봉사활동 기간 내내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걸고 수술을 해야 하는 저희 팀에게는 못내 마음의 부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원 현관은 미리 소식을 듣고 온 구순구개열 환자와 보호자들로 병원 복도까지 이미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서로 자신의 아이를 먼저 수술해 달라고 소리 지르는 보호자들로 인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능숙한 현지 간호사의 통제로 어느 정도 질서를 잡은 후 진료를 보면서 4.5일 간의 수술 일정을 잡았는데 단 1시간 만에 모든 스케쥴의 예약이 다 찰 정도로 많은 환아의 진료를 보았고, 이후로도 계속된 진료에서도 환자가 너무 많아 우리는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내년에 다시 오라는 가슴 아픈 말을 계속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병원에서 기계들을 가져오고 맞지 않는 손발을 어렵게 맞춰가며 오후동안 간신히 4건의 수술을 진행하고 파김치가 된 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며 첫날 한 수술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랜 비행의 피로까지 누적되어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교과서만으로는 알 수 없는 많은 지식과 술기에 대해 배우자 피로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날부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8시까지 하루 8~9케이스 정도의 수술을 진행하였고 마지막날까지 총 37명의 환자를 수술하였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어려운 케이스가 아니면 대부분의 수술을 전공의들에게 집도시키시고 스스로 어시스트를 하시며 교육에 열의를 보이셨습니다.

전공의 1년차 때부터 어시스트를 해 보았고 교과서도 여러 번 읽어 보았지만 막상 제가 직접 집도를 해보니 너무나 달랐습니다. 수술과정을 모두 이해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기본적인 술기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옆에서 지도해 주시는 교수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채찍같이 느껴지며 스스로 얼마나 자만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직접 수술을 해본 후 교수님 수술을 다시 보았을 때 그제야 수술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실로 참교육이란 무엇인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직접 집도했던 구순구개열 수술이 끝난 후 수술의 결과를 바라볼 때의 뿌듯함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크게 벌어져 있던 어린아이의 입술이 반듯한 모양으로 모아져 있는 것을 보자 수술 중 옆에서 지켜보던 현지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평상 시 하루의 일과는 오전 수술 전에 병동에서 회진을 도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직접 수술했던 환자들에 눈이 더 많이 가게 되고 수술의 결과가 좋다고 설명하시는 교수님 말씀에 어깨가 으쓱하며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구순구개열 환자들 이외에 다른 기억에 남는 것은 화상으로 인해 손가락 관절이 구축되어 버린 환아들이었습니다. 집에 불이 나 전신에 화상을 입어 흉터로 온 몸이 뒤덮인 남매 중 하나였는데, 사고로 부모도 잃고 이모 손에 자라고 있는 안쓰러운 아이들이었습니다.

다른 부위도 크게 문제였지만 왼쪽 다섯 번째 손가락에 구축으로 인해 잘 굽힐 수 없는 점이 가장 불편해 보였습니다. 저희는 구축 부위에 흉터 성형을 하여 손가락이 잘 굽혀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었지만, 그러한 큰 사고 후 특별한 치료도 할 수 없었던 낙후된 현지의 의료시스템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환경에서 최고 수준의 수술을 받은 구순구개열 아이들은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행운을 안겨줄 수 있었던 저희 팀에 대해서도 무한한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보호자들로부터 고마움의 표시로 집에서 직접 만든 전통음식을 선물로 받았는데, 예상치 못했던 보답에 그 동안 쌓인 피로마저 모두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마지막 수술이 끝난 후 병동을 돌며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데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아이부터 교수님의 성함을 물으며 꼭 기억하겠다는 보호자까지 있어 누쿠스 사람들의 진심이 전해지는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봉사활동을 다닐 때마다 봉사란 과연 무엇인가, 누구를 위하여 나는 왜 봉사를 하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됩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다는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어찌 보면 참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정이 끝난 후 환하게 웃어주는 환자들의 미소는 그런 고민들을 모두 부질 없는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 동안의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교수님들께 고마움을 느꼈고 한편으로 힘든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봉사팀의 봉사정신에 감탄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최고 수준인 건국대학병원의 구순구개열 치료를 통해 한국의료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것이 자랑스러웠고, 무엇보다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나눔의 의료를 실천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낄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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